신앙_설교정리

260125_설교정리_주님이 참 고마워하는 인생 (막12:41~44)

서정원 (JELOME) 2026. 1. 25. 20:07

○ 말씀 전문

[마가복음 12장 41~44장]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받은 말씀

헌신, 특히 헌금에 대한 설교는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차가지일 것입니다. 헌금에 대해, 부담이 아니라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헌신과 헌금을 얘기하는 것은 그만큼 그 이유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고, 그 여인의 헌금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단지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아주 적은 헌금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헌금을 높이 평가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이 과부의 적은 헌금을 칭찬하고 기뻐하셨을까요.

 

1. 주님만 의식하는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봉헌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를 도우는 사람들이 헌금함을 돌리면 성도들은 가지고 온 헌금 봉투를 그곳에 넣습니다. 아무런 눈치 없이 넣는 사람도 있고, 좌우에 앉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넣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봉투를 준비해 오지 않는 사람 중에는 빈 주먹을 헌금함 속으로 넣었다 빼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헌금하는 사람들도 많기에 굳이 이런 행동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씁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할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헌금하는 사람을 좋아할까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했을까요? 렙돈은 유대 화폐이며 고드란트는 로마 화폐입니다. 그리고 당시 헌금함은 나팔모양의 놋쇠로 되어 있어서 화폐가 떨어지면 그 소리로 헌금의 양을 가늠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렙돈은 얇고 가벼워서 헌금함에 떨어져도 거의 소리가 나질 않았습니다.

만약 그 과부 여인이 주변 사람들을 의식했다면 오히려 헌금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꺼리낌 없이 헌금함에 그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왜였을까요? 그녀는 사람들의 의식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주님만 의식했기 때문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의식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며 헌신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헌신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마음이 담긴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 물질, 생명까지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져가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드릴 때 그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과부의 헌금을 지켜보신 예수님은 단지 두 렙돈 넣은 그 과부의 헌금을 '많이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43절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단지 두 렙돈 밖에 넣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이 가장 많이 넣었다고 하신 것은, 헌금의 가치를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마음을 주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귀한 선물이라도 마음이 없는 선물은 뇌물일 뿐입니다. 아무리 작은 선물일지라도 그것이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면 기쁘고 고마운 선물입니다. 무슨 문제이든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일수록 마음을 다한 헌신이 빛이 납니다.

마음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입니다. 마음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 생명체가 빛이 되고 희망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있는 예배, 마음이 있는 기도, 마음이 있는 헌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새로운 한주도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주의 사랑을 받는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주님이 참 고마워하는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드리는 수준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여하면 축의금을 냅니다. 10만원을 내는 사람도 있고 20만원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50만원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축의금을 정리하면서 당사자는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똑같은 10만원을 낸 사람에 대해서도 낸 사람의 형편에 비해 큰 금액을 낸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도록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와 깊이가 누구보다 큼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드리기를 기대합니다. 그 마음이 생각보다 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최고로 마음을 줄 때 일어납니다.

드러내기 주저되는 고백이지만 주님의 고마움을 확인한 사건을 간증합니다. 제겐 두 딸이 있습니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이름으로 청약저축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교회 건축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기도 중에 이 청약통장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들고 있던 이 청약통장을 해지하고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주님! 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했던 통장입니다. 이 통장을 주님께 드립니다. 제 아이들에게 나중에 좋은 집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박목사야! 고맙다" 제가 드리는 마음에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주신 주님이 제겐 더 고마웠습니다.

다시 두 렙돈을 드린 과부의 마음을 보겠습니다. 두 렙돈은 과부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성경에는 샹활비라고 되어 있지만 전 생계비라고 느껴집니다. 생계비는 없으면 굶을 수 밖에 없는 마지막 돈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두 렙돈 중에서 한 렙돈만 드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마음의 찌꺼기까지 다 드렸습니다. 주님이 어찌 고마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보고 고마워할까요? 하나님은 어떤 인생에 주목하고 축복의 은혜를 주실까요? 고마운 사람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마운 사람을 주목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고맙다고 할 그런 헌신의 삶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