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51228_설교정리_왜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까 (막9:21~24)

서정원 (JELOME) 2025. 12. 28. 17:30

○ 말씀 전문

[마가복음 9장 21절~24절]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받은 말씀

한 교회 옆에 있는 술집이 너무도 시끌벅쩍하여 예배에 큰 방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참다 못해 저 술집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천둥과 벼락이 치고 그 술집이 불탔습니다. 술집 주인은 변호사를 동원하여 교회를 고소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의 기도 때문에 술집이 망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측은 기도한다고 해서 벼락을 맞았겠느냐며 반박을 했습니다. 최후 판결문에서 판사가 한 말입니다. 술집은 기도를 믿었고 교회는 기도를 믿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과거에 들었던 이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귀신들린 아들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한 아버지는 할 수 있거든 귀신을 내쫒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고, 믿는 자에게는 결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 중에는 응답되는 기도도 있고 응답되지 않고 있는 기도도 있습니다. 응답된 기도에 대한 감사는 잠시이고, 응답되지 않고 있는 기도만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의구심을 갖습니다. 왜 내 기도는 잘 응답되지 않을까?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기도란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기도는 ...

 

1.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기도 응답이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기 믿음이 온전하지 못해서일까 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꽉 채워지면 응답될 것이라고 오해하며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하시는 응답이 있는 믿음은 100%로 꽉 채워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100% 채워진 믿음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 도달하기 어려운 100%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본문 22절입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우리는 자식이 아프면 안 해 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해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이의 아버지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찌 해 볼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말이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자기 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무력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 제게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제는 더 해 볼 것이 없는 무력함 뿐입니다 라는 고백, 이것이 믿음의 기도의 출발입니다. 100%의 믿음으로 살아가고 100%의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불가능한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내 무력함과 무능함을 정확하게 고백하는 정직함이 하나님의 응답의 은혜를 가져다 줍니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내 공로와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요구할 것이 있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내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가고, 주일 성수를 잘 지키고, 헌금을 잘 해야 기도 응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기도 응답이 없을 때, 내가 그만큼 열심히 새벽기도 다녔는데, 한주도 빠짐없이 주일성수를 했는데, 아까운 내 돈을 정성스런 헌금으로 드렸는데 라는 자기 공로를 내세우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기도했는데 라는 교만을 갖게 됩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기도 응답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 떠나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 응답은 우리의 공로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공로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야 합니다.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부터 13절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세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내 공로 내 헌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응답의 정답은 아닙니다. 내 능력의 한계, 내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의탁할 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를 함께 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치료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가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또는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오류입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기도 응답이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것은 바람직한 믿음의 기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응답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을 해주시는 것도 응답해 주시는 방법과 결과도 모두 주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안질과 간질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놓고 세 번을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서 그 질병들을 거두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때 바울이 한 고백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기의 기도에 거절의 응답을 주신 것도 주님의 주권이고, 거절하심이 또다른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알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의기소침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치유의 은혜가 주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모든 응답, 모든 기다림은 다 주님의 주권하에서 이루어짐을 알고,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감사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평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도 무응답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고, 끝까지 주와 동행하며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