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 받은 말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라는 연속극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대기업 임원이 목표였던 김부장이 회사 생활에서 겪는 애환을 통해 이 시대 직장인의 삶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힘들고 아픈 삶을 엿보면 우리는 다시 한번 가족의 중요성과 자기자신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인생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가치, 나아가 복음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되돌아 보고 그것을 구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회복하고 지켜가야 할 삶의 가치는 ...
1. 빌립보 가이사랴 신앙의 가치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 여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가 상기해 봐야 할 것은 이 고백이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때 베드로의 고백이 더 크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가이사랴 황제의 이름을 딴 도시 이름입니다. 도시에 황제의 이름이 붙으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는 황제의 이름에 걸맞는 웅장함, 즉 물질과 돈으로 번화한 도시여야 합니다. 둘째는 황제를 숭배하는 동상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물질과 권력이 삶의 기본이 되는 장소에서 베드로는 이 신앙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동탄도 황제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돈과 권력과 화려함이 우리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절대 목적이 되어 있는 곳일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풍성한 식사, 더 화려한 옷, 그리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도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곳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물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주저없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가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가치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가질 것이라는 최고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얼마 자나지 않아서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다. 31절부터 33절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 격하게 항변했습니다. 베드로는 왜 항변했을까요? 그의 마음 속에는, 믿고 따르면서 헌신했다고 여겼던 자기 자신은 그럼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 유익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가치 보다는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앞세우자 예수님이 불같이 화를 내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 도움이 되고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반면 사람의 일이란 내 욕심과 유익을 앞세우는 내 왕국을 짓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삶입니다.
유영석 목사님 부부는 필리핀의 세부 빈민가에서 선교생활을 하시던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려 돌아가시자 한국에서의 안정된 사역을 접고 세부 빈민가로 갔습니다. 잘 나가던 한국 내에서의 사역을 버리고 그곳으로 간 것은 그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어디에 더 가치를 두고 살고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 하나님 영광을 잊어버리고, 혹은 뒷순위로 돌리고 내 삶만 우선시 하며 사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거기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타날까요? 열심히 기도한다고 주의 은혜가 주어질까요?
물론 자기의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 하나님의 일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믿음의 여정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더 큰 복된 인생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사랑을 통과한 자기부인에 대한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최우선에 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을 깨닫고 이해했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실제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 가슴 속에 나침판을 지니고 언제든 곧바로 그 나침판을 꺼집어 내어 삶의 지침으로, 무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 나침판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34절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가 진정한 삶의 나침판이 되려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권력과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오직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의 사랑은 하늘 보좌를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것도 십자가를 통해 버리셨습니다. 마지막 한줌의 사랑까지도 우리에게 쏟아부은 사랑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현실적인 얘기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한쪽 눈을 잃은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애꾸눈으로도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친구들이 아버지를 보고 무섭다고 했을 때 그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을 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아버지에게 아빤 왜 애꾸눈이냐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묵묵히 아무 대답도 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랍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의사의 진단과 아버지의 손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아들은 어렸을 때 사고로 한쪽 눈을 잃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이식하면 아들의 눈을 살릴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한 점의 망서림도 없이 자기 눈 한쪽을 떼내 아들에게 이식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한쪽 눈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려놓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부인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냥 참고 지는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이기려고 고함치고 우기는 것을 참는 것이 십자가가 아닙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부인하는 사랑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이 사랑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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