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마가복음 8장 13~15절]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 받은 말씀
간디는 [가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 대제로 다음 7가지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①원칙없는 정치, ②노동없는 부, ③도덕없는 상인, ④양심없는 쾌락, ⑤인격없는 교육, ⑥인간없는 과학, ⑦희생없는 예배 라고 했습니다. 간디는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이 시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대제의 하나로 '희생없는 예배'를 지적했습니다.
예수님도 오늘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지적해 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오병이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변하지 않고 있는 제자들에게 왜 그런 변화가 없는지를 콕 집어서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이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 일 수 있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내 자신의 삶과 믿음을 되돌아 보고 진정한 변화를 위해 다시 한번 결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적한 진정한 변화가 없는 이유는 ...
1. 영적으로 깨닫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이전에 예수님은 오병이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귀신 쫒음, 그리고 칠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곤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먹거리를 챙기지 못했음부터 걱정했습니다. 14절과 16절입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14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16절)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답답한 마음으로 지적하십니다. 17절과 18절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들 눈앞에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17절부터 19절입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그들이 변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아직도 깨닫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지적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먹이고 잘 인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앞에 놓여있는 문제 때문에 그 전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깨달음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시인 목사이신 고훈 목사님의 [목회일기]에 나오는 고백의 시입니다.
...............................................
신학생 담임전도사 시절
눈은 온통 땅 위에 쌓이고
쌀은 떨어지고 나무도 다 뗐다.
저녁밥을 굶고 나니
첫 아이 갖고 배부른 아내가
가엾고,
왠지 무능한 사람 같아
서글퍼졌다.
40일도 금식한다던데
눈 오고 날씨 찬데
돈 꾸러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반지 팔아 쌀 팔아 먹을 수도
없고,
한끼 굶자
신앙으로 합의하고
누웠다.
밤 10시 다 돼가는데
계시받고 온 사람처럼
집사님이 쌀 한 말과
나무 가지고 와서
부엌에다 놓고 간다.
늦은 밤
저녁상 앞에 놓고
감사기도하다가
우리에게 오늘도
일요할 양식을 주시오니 감사하나이다
하는 대목에
나는 울었다.
예수 믿는 날부터
수천번을 주기도를 외웠으나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
우리도 교회에 다니고부터 주기도문을 수천번을 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없는 주기도문 암송은 아무런 힘도 권능도 없습니다. 읽고 외우고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이 있을 때 우리는 중심이 변하는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깨달음을 구하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바리새인의 누룩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가복음에서 직설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절입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바리새인의 누룩은 외식을 뜻합니다. 외식은 '겉모습만 신경쓰고 신앙의 본질을 소홀히 하는 태도'입니다.
이 부분을 묵상 할 때마다 어릴 때 본 모습 하나가 떠오릅니다. 매일 아침마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시던 한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항상 옆집 호박을 하나씩 따 가는 모습입니다. 형식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드리러 다닌다고 자부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은 남에게나 혹은 자신에게 겉모습만 드러내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슬람교인들의 종교적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런 그들이 후세인을 제거하는 연합군을 만들 때 흔케히 동참했습니다. 그리곤 바그다드 시내를 점거할 때 후세인의 동상을 밧줄로 묶어 넘어뜨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들이 보인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바그다드 각처를 휩쓸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하루에 최소 다섯 번 이상을 메카를 향해 기도하던 그들의 기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기도였을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으로,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것으로 내 할 몫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닐까? 예배에 참석하고 나가면서 목사님께 눈도장 찍으려고 용을 쓰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살려면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식에 신경을 쓰는 신앙에는 '경건한 모양은 있어도 경건의 능력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외식을 경계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17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키워드는 '속사람'과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심'입니다. 속이 변해야 진짜가 변하는 것입니다. 진짜가 변해야 우리 가정이 삽니다. 외식이 아니라 속사람이 변하는 은혜가 주어지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영적인 헤롯의 누룩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15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이번엔 헤롯의 누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서는 헤롯의 누룩이라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이 부분을 사두개인의 누룩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렇다면 해롯의 누룩은 어떤 의미이며, 사두개인의 누룩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헤롯은 로마로부터 인정받아 예루살렘 지역을 통치하던 분봉왕 가문입니다. 오랜 동안 지역을 통치해온 이 가문의 특징은 욕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도한 세금과 뇌물, 탈세로 점철된 가문이 되었습니다.
반면 사두개인은 제사장 출신이 주류였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목사에 해당됩니다. 이조 말기에 일제의 앞잡이 같이 친로마적 성향을 가진 부류였습니다. 그들은 점차 종교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돈과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헤롯의 누룩이든 사두개인의 누룩이든 형식적으로는 신앙인 인체 하면서 속으로는 기복주의와 세속주의를 향해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도 반은 세상을 바라보고 살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은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삶의 모습은 여전히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신다면 우리는 이 헤롯의 누룩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해에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 할 수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비전의 사람]에서 종교는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구분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자기부인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된다고 하셨습니다. 고등종교가 타락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①성직자가 급증한다 ②종교기관이 급증한다 ③기복주의가 된다 ④종교집단이 이해집단이 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이렇게 변해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나도 모르게 헤롯의 누룩이 우리를 침범해 들어오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느날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에게 은근히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나를 커피에 비유한다면 어떤 커피에 해당 될 것 같아요?" 그 질문에는 은연중에 에스프레소 같다고 대답하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나더러 카푸치노 같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카푸치노는 커피 엑기스는 적고 거품만 많은 커피입니다. 농이었지만 뜨끔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내 신앙에 엑기스가 잘 만들어져 가고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진짜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진짜인 삶이 가치있는 삶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를 구하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진짜를 통해 진정한 변화가 찾아오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51221_설교정리_1.5의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라 (막9:2~5) (1) | 2025.12.21 |
|---|---|
| 251214_설교정리_하나님의 일인가 사람의 일인가 (막8:27~29) (0) | 2025.12.14 |
| 251130_설교정리_하나님을 믿을 때 믿음이 이긴다 (막7:25~28) (3) | 2025.12.01 |
| 251123_설교정리_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막6:35~38) (1) | 2025.11.23 |
| 251109_설교정리_이제 역전되리라 (막5:21~24) (0) | 2025.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