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51102_설교정리_WHY가 아니라 HOW에 집중하라 (막5:25~28)

서정원 (JELOME) 2025. 11. 2. 18:08

○ 말씀 전문

[마가복음 5장 25~28절]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받은 말씀

도종환의 [담쟁이]라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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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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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담쟁이 줄기가 자기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절망' 같은 담장을 기어 오르기 시작하여, 그 절망인 담장이 다 덮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어오릅니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혈루병은 유출병이라고도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남편은 물론 그 어떤 공동체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받습니다. 그녀 앞에는 오직 절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으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그 절망을 당하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절망의 삶 속에서 믿음의 역사를 쓴 여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절망의 벽을 넘어서려면 ...

 

1.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하는 훈련을 하라

먼저 오늘 본문의 여인이 처한 상황을 보겠습니다. 25절과 26절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10년 이상 병마로 시달라게 되면 지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도 12년 동안 병마, 그것도 사람들이 곁에 오는 것 만으로도 질겁을 하는 혈루병으로 시달렸습니다. 가진 돈도 다 떨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호전되기는 커녕 더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스런 마음이었겠습니까? 그녀의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 유출병 여인은 HOW, 어떻게 했을까요? 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았으며 절망이 아니라 그 희망을 선택했습니다. 27절과 28절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러한 희망 선택은 내 의지 만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작은 실망에서부터 실망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하는 훈련을 하고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절망스런 상황은 없다. 단지 절망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라는 지혜로운 태도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요즘은 어린이 집에서도 화재 대피훈련을 합니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작은 훈련 하나가 그들에게 무의식 중에 대피하는 습관을 형성하게 하고, 비상시에 목숨을 살리게 됩니다. 우리도 이러한 영적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희망을 선택하는 훈련은 습관화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절망 앞에 있을 때 성령의 은혜가 있거나, 말씀이 들어올 때 희망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성령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절망 앞에서 희망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 앞에 영혼의 중심에 있는 것을 내려 놓으라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거기로 흘러나감을 아시고 물으셨습니다. 30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예수님이 과연 누가 손을 대었는지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 질문을 하신 것은 그 혈루병 여인으로부터 33절과 같은 고백이 나오도록 유도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33절입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님의 물으심에 그 여인은 자신의 염려, 걱정, 두려움을 쏱아놓았습니다. "모든 사실을 여쭈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병을 온전히 채료받기 위해서는 내 아픈 증상을 속속들이 의사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절망 앞에서 희망을 선택하기 위해 내 마음 속의 근심을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기도 제목을 내어놓을 때, 사람들 앞에 부끄럽거나 부담스런 기도 제목은 숨깁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사람의 기도 제목에는 응답의 은혜가 곧장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지금도 하나님은 묻습니다. '네 진짜 걱정과 근심은 무엇이냐?'

인생의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 앞에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을 내어 놓을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짜를 고백할 때 일하십니다. 내 영혼의 중심에 있는 진짜 문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3. WHY가 나이라 HOW라는 질문에 집중하라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WHY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그 원인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해결의 은혜를 얻기 어렵습니다.

만약 혈루병 여인이 '왜 내게 이런 질병이 주어졌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녀의 인생에는 답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WHY보다는 과감하게 HOW를 향해 예수님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혈루병을 앓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접촉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HOW에 집중했습니다. 그녀의 HOW는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만나면 WHY에 사로잡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지독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저는 신학대학에 다닐 때까지도, '왜 우리 집은 이리 가난한가', '왜 우리 아버진 목사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WHY보다 HOW에 집중할 수 있게 될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선하신 하나님은 그 어떠한 악한 이유도 없이 이 상황을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목사 아버지를 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전 '목사 아들이 아니지만 목사 아들 보다 더 나은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전 일류 대학 나온 사람 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비단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전 일류 기업에 다니는 사람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더 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HOW에 집중하면 됩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들이 WHY는 최소화하고 HOW에 극대화 하기를 소망합니다.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는 새로운 한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