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마가복음 4장 39~41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 받은 말씀
젊은 시절 시골에 살 때, 진주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는 골짜기는 2~3키로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중간에 묘지들도 있어서 밤 늦게 혼자 버스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할 때는 무섭기 그지 없었습니다. 다행히 장에 갔다 오시는 마을 어른이라도 만나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는 그저 두렵기만 합니다.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암담하고 캄캄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 이 세상 살아가기가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걸어가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얼마나 다행이고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불레싱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블레싱은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자리에 나올 때, 대부분 혼자 스스로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나를 아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의 초대로 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만도, 더 이상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자리에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다 보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나와 함께 걸어가시는 더 큰 하나님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축복이 오늘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오늘의 말씀이 주시는 영적 레슨은 ...
1. 인생에는 누구나 생각지 못한 풍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는 '이 세상에 딱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것이고. 들째는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것이며, 셋째는 '이 세상엔 공짜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더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좋은 저택에 사는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저 사람에겐 아무 어려움이 없겠다 싶습니다. 대기업 회장님을 만나면 저 분은 아무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늘 웃으며 봉사하시는 분을 보면 저 분에겐 아무런 걱정과 어려움이 없겠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을 만나 속내를 알아보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건너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도 그 인생 길에 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는 그 곳 배 위 고물에 예수님이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풍랑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 풍랑을 해결해 줄 대안이 필요합니다.
2. 인생의 풍랑 속에 함께 계신 예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광품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당시의 배는 지금의 커다란 배들과는 다릅니다. 작은 바람에도 휩쓸려 뒤집힐 수 있는 나룻배 같은 배였습니다. 큰 광풍이 일었다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하지만 그들 중에는 어부 출신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으로 파도와 싸우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속수무책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닫고 급히 깨웠습니다. 38절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광풍과 풍랑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어 계셨을까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저들이 누구를 바라보고 붙들지를 관망하고 계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자들이 좀 더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도움을 청했다면 그들의 두려움과 광풍과의 사투는 훨씬 빨리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생에서 고난을 만나도 그 주님이 함께 계심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힘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빨리 인식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알고 도움을 청할 때 예수님은 일하십니다.
인생에서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환란, 문제, 걱정과 두려움, 그 어떤 문제이든 함께 계신 예수님을 통해 해결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예수님이 내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Good News입니다. 성경에는 4대 복음서가 있습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Good News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바람도 잠잠케 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바람, 문제를 놓고 그 주님께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있습니다. 40절과 41절입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들이 '그가 누구이기에' 라고 놀라고 있습니다.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을 봐 온 제자들도 예수님이 말 한마디로 광풍까지 잠재우시는 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이 일까지 해결되겠는가' 라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 대상의 한계를 미리 설정하고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풍랑이 그 어떤 풍랑이든 다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블레싱, 복된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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