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51026_설교정리_당신은 만족하십니까 (빌4:11~13)_김태권목사

서정원 (JELOME) 2025. 10. 26. 20:00

○ 말씀 전문

[빌립보서 4장 11~13절]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받은 말씀

어떤 사람이 부부생활이 어려워서 이혼을 하고, 이번에는 정말 만족할 수 있는 배우자를 제대로 만나 재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추천받았습니다. 컴퓨터가 제시해 준 적임자는 무려 3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중에서 다시 조건을 달아 추천을 받았더니 4명으로 압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4명의 대상자 중에서 컴퓨터가 1위로 추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이혼한 전 부인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현재의 배우자에게 만족하십니까? 자녀들은 당신을 아버지로서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에 만족하십니까?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도 만족하십니까? 글쎄요. 아마도 자신의 삶에 정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복이 있습니다. 저는 복중의 복은 아마도 '만족'하는 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족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족은 자기 안에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옥중에 있으면서도, 언제 사형 당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충분히 만족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자족함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1. 환경이나 삶의 여건에 관계없이 만족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환경이나 여건이 좋아지면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삽니다. 돈만 있으면 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삽니다. 돈이 생겨서 좋은 침대를 산다고 해서 단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단잠은 살 수 없습니다. 비싼 음식이 있다고 해서 식욕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좋은 음식은 살 수 있어도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돈이면 다 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듯 환경이나 여건이 좋아지면 삶의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과 여건에 관계 없이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자족입니다.

 

2. 삶의 만족은 여건과 환경을 통해 배웁니다. 

진정한 만족은 환경과 여건에 관계없이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만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본문 12절 바울의 고백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렇습니다. 만족하는 마음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인간은 욕심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린애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애들은 절대 만족할 줄 모릅니다. 배우지 않아도 욕심을 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하는 믿음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믿음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절로 되지 않는, 욕심의 반대인 만족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욕심을 만족으로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신앙의 연륜을 쌓아가면서 얼마나 욕심에서 만족으로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만큼 만족이 많아지나? 불평과 불만만 더 늘어가고 있지는 않나?

이 욕심을 만족으로 바꾸는데는 다양한 환경이 기회가 됩니다. 비천할 때가 찾아오기도 하고 풍부가 찾아올 때도 있어야 우리는 우리는 진정한 만족의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을 배울 수 있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우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삶의 환경과 여건을 통해 만족을 배운다고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듣는다고 배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똑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악조건들이 해결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고 전능하신 예수님에게 기도만 하면 예수님이 내 종처럼 되어 원하는 것을 다 해결해 주신다는 해석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알라딘 이야기를 들고자 합니다. 소년 알라딘이 모래 속에 있던 램프를 발견합니다. 그가 그 램프를 열자 펑 소리가 나고 지니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지니는 알라딘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줍니다. 지니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이 주인이 되고 만능꾼인 지니는 알라딘의 종처럼 굽니다. 이 얘기를 통해 행여 우리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지니처럼 여기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13절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하면 그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거니 바꿔주시지 않으시더라도 우리는 그 분 때문에, 그 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복이며, 영적인 복은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주권자 왕으로 믿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분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까지도 좋은 것으로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변려견을 키우는 사람을 예로 들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려견 주인은 늘 손에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반려견이 배설물을 쏱으면 그 봉지에 담아서 치웁니다. 그런데 그런 주인을 바라보는 반려견의 생각을 상상해 봅시다.

만약 반려견이 '내 주인은 내가 싸는 것을 다 치우니 내 종이나 다름없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 분은 얼마나 날 사랑하시기에 내가 싼 더러운 것까지 치워주시는구나. 난 평생 이 분을 섬겨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행여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종 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 평생 죄를 짖고 살 수 밖에 없던 존재입니다.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까지 주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돌봐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면 형통해지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예수님 자체가 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내 복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만족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만족하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