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51005_설교정리_내가 죽을 때 우리 가정이 산다 (막3:31~35)

서정원 (JELOME) 2025. 10. 5. 21:58

○ 말씀 전문

[마가복음 3장 31~35절]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 받은 말씀

박성철의 [행복비타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슬기라는 아이와 함께 사는 가정 이야기입니다. 어렵게 사는 형편 때문에 서로 선물을 주고 받지 못해, 가족들이 서로에게 주고싶은 선물을 그림을 그려주자고 했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멋진 자동차를 그려서 선물을 했고, 아빠는 엄마에게 근사한 진주목걸이를 그려서 선물을 했습니다. 또한 슬기에게는 아빠는 자전거를, 엄마는 장난감을 그려서 선물을 했습니다. 슬기가 선물을 보여주는 차례가 되었고, 슬기의 그림을 본 엄마아빠는 그림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슬기가 그린 그림은 환하게 웃는 남자와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제목으로 "우리"라고 그려져 있었습니다.

슬기가 그림의 제목으로 붙인 "우리"는 함께 하는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가족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고 건강한 가족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행복의 비타민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미워하고 갈등하는 지옥같은 곳인지 한번 돌아볼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가족, 혹은 부모나 형제자매들과 앙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행여 아픔이 있는 가족이라면 이 명절을 기해 새롭게 회복되고, 진정 복된 명절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에수님의 부모 형제가 언급되어 있는 가족관련 얘기입니다. 단순히 읽고 그치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씀이지만, 성경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속 뜻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어떤 가족이 필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 이번 명절은 더욱 풍성한 명절이 될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이 주는 레슨은...

 

1. 혈육의 가족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간혹 결혼식 주례를 볼 때가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신랑 신부가 미리 와서 인사를 하기도 하고, 결혼식 당일에 주례인 나를 챙기려고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식 이전에 인사를 올 때 결혼식 순서지를 가져와 보여줍니다. 그러면 저는 항상 "부모님과 잘 상의 해서 정하면 좋겠다" 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리고 "당일날 난 어떻게든 알아서 갈 테니 주례 보다는 부모님을 잘 챙겨라"라고 조언합니다.

많은 신랑신부들이 요즘 결혼식 풍조가 옛날과 다르다며 부모님과 의논하지 않고 둘이서 방법과 식순을 정합니다. 그러나 난 꼭 부모님과 상의하라고 합니다. 부모님께 의논을 드려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너희들이 잘 알아서 해라"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상의를 드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평생을 키워주신 부모님입니다. 그 부모님께 한마디로라도 상의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언뜻 보면 육신의 가족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31절부터 33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그러나 그들이 찾아온 배경을 이해하고, 성경 곳곳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가족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귀신을 쫒아내고 새리와 창기와 함께 어울려다니는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쳤다 해서 근심스러워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의 가족 사랑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부모형제들의 걱정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혈육성을 부정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 곳곳에서 가족 사랑과 부모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디모데전서 5장 8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일서 4장 21절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이 마음으로 부모님을 만나고,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더욱 화복하고 복된 명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삶의 복음이 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이 넘치는 추석 명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영적인 가족의 소중함에도 눈 뜰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렵게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에게 왜 예수님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가만히 살펴보면 만약 육적 혈육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냥 "저 사람들은 내 부모, 내 형제가 아니다"라고 심플하게 말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심플하게 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보라'라는 뜻으로 열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저들도 내 가족이지만 영적인 가족도 중요하지 않느냐 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면이 강하지만 당시는 가족이라 하면 혈연과 혈족만 생각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혈육적인 가족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가족도 있다는 인식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가족이라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신 것입니다. 

혈육의 가족이 누구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첫번째 레슨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나 혈육의 가족이 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가족에게는 말못할 사정이 누구에게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목장 가족들과 나누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그런 문제에서는 혈육의 가족 보다, 영적인 가족이 더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혈육적인 가족과 함께 영적인 가족도 소중합니다. 예수님이 던진 열린 질문은 우리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형제 자매들과 전국 각지로 떨어져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에야 겨우 얼굴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년에 두어번, 많으면 너댓번 만나는게 고작입니다. 반면에 목장 가족들과는, 자매 목장들은 매주, 형제 목장들은 2주에 한번 만납니다. 혈육적 형제자매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만납니다. 삶에 끼치는 영향도 그만큼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가족입니다.. 이 영적인 가족의 소중함에 눈뜨고, 영적 가족을 통해 삶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가족이 진정한 영적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 싸움이나 어려운 가정사로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 남편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다고 여겨지고, 아내의 말을 들으면 아내의 말이 맞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옳다는 주장이 강하고 그 주장을 기반으로 해서 들으면 당연히 맞습니다. 그런데 왜 다툼이 일어날까요?

그리스도인은 내가 옳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내 소견대로 살게 되면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음을 아시고,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길로 인도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향해 자기를 주장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영적 가족의 핵심은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주신 당시의 배경을 이해하면 더욱 쉬울 것입니다. 당시에는 심각한 차별의식이 있었습니다. 여성보다 남성을 높였습니다. 심지어 여자는 숫자에도 반영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방인을 개돼지 취급을 하고 유대인만 사람 취급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창기와 세리의 친구가 되어주는 예수님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같은 부류끼리 사는게 옳다고 여겼던 그 시대에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돌아보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며 삽니다. 그것이 정말 옳다면 왜 가정이 깨어지고, 공동체가 깨어질까요? 이 의문을 갖고, 내 뜻이 옳다고 주장하며 사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 정답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예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덕삼 장로와 이재익 장로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조지뮬러 목사님의 에피소드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지뮬러는 2,000명의 고아를 돌보고 섬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능력이라뇨? 제게는 죽음만이 있었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죽음만이 능력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내 주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야 내 가정이 산다는 십자가 정신이 없으면 결코 내 주장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능력의 원천입니다. 내 십자가 죽음만이 내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영적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가족으로 거듭나기를 축복하며, 화목하고 복된 추석 명절 보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