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0414_설교정리_고난에 대한 전지적 참여 시점 (약1:2~4)

서정원 (JELOME) 2024. 4. 15. 09:51

○ 말씀 전문

[야고보서 1장 2~4절]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받은 말씀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 전참시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참시는 전지적 참여 시점의 약자인데, 스타와 매니저가 함께 출연하여 매니저의 시각과 관점에서 스타의 삶을 공개하고 참견을 통한 코칭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스타 자신과 매니저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스타가 아니더라도 평생 얼굴을 맞대고 사는 남편과 아내도 서로 바라보는 시각에 크다란 차이가 있어서 다투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 인생을 나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어야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인 야고보는 인생의 고난 앞에서 그 시련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난에 대한 전참시, 성경이 보는 고난에 대한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고난을 기쁘게 여기라는 이 성경 말씀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을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 고난이 지나가고 세월이 흘러가고 나서야 그 뜻을 발견하게 되고 한 발짝 더 내가 변화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당장 시련 앞에서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전지적 참여 시점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1. 시련은 믿음을 검증케 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메시지 성경은 "친구 여러분, 시험과 도전이 사방에서 여러분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선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시련을 겪을수록 여러분의 믿음 생활은 훤히 그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시련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시련을 충분히 참고 견디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숙하고 잘 다듬어진 사람, 어느 모로 보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코너에 몰릴 때 본성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메시지 성경은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실체가 훤히 드러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여겼던 우리에게도 시련 앞에서는 원망과 비난과 좌절이 덮쳐옵니다. 이 시련을 인내하고 견디면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그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원망과 비난과 좌절이 앞서지 않는 보다 성숙한 자로 변하게 됩니다. 

시편 22편을 보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다가선 시련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 22편의 23절과 24절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1절에서 23절과 24절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날 때 우리는 이처럼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한 자매님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한쪽 눈에 이상이 생겨 한쪽 눈을 불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우 활동적인 그녀였지만 집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언젠가는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호전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인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믿음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인생을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은둔하던 집을 나서 특별새벽기도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운전을 할 수 없는 처지라서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 특새를 완주했습니다. 어떨 때 감사하게 될까요? 포기했을 때일까요? 믿음의 길로 나아갔을 때일까요? 시련 앞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만날 때 우리는 감사의 삶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시련 앞에서도 하나님의 전지적 참여 시점을 인지하고, 우리 인생의 반석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시련은 인격을 성숙케 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 얼마를 견디지도 못하고 물위로 얼굴을 뻗습니다. 하지만 숨을 참고 참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오랫 동안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게 됩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처음부터 42.195Km를 완주하게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오랜 고통을 참고 연습함으로써 전 코스를 완주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성숙은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온전'을 '성숙'으로 바꾸어 이해해도 됩니다. 삶의 성장은 인생 과정에서 만나는 시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다]에서 제럴드 싯처는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은혜를 경험했다. 그 고통을 이겨내서가 아니라 그 은혜가 나를 자라게 했다' 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그 은혜가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성숙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케 하기 위해 우리를 고난 속에 방치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TV 프로그램에 '나는 솔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짝을 찾지 못한 청춘남여들이 일주일간 합숙을 하면서 이성을 알아가고 최종적으로 마음에 합한 사람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다른 차수들의 몇몇 사람들을 초청하여 '나는 솔로 그후 사랑은 계속된다' 라며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처음 '나는 솔로다'에 나와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다가 짝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 이후 '그후 사랑은 계속된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는 외모도 더 세련되고 보다 성숙된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실패나 시련을 통해 더욱 성숙해집니다.

시련을 그냥 고통과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좌절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성숙의 훈련이라 여기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3. 시련은 우리로 기도케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러 가지 시험'이라 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련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모든 시련들을 홀로 이겨내기는 어렵습니다. '당하거든' 이라는 단어도 '당하는 때'라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습니다. 시련은 늘 당하게 되고 피해갈 수 없는 일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난을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다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련 앞에 설 수 밖에 없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를 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평소에는 침착하던 사람도 고난과 시련이 닥치면 맨붕 상태가 되기 일쑤입니다. 우리에게 그 시련을 뚫고 나갈 지혜가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구하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그 지혜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맨붕 상태가 왔을 때, 그 시련을 뚫고 나가는 결정적인 수단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크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좌충우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공급받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잘 지킨 사람으로 여호사밧을 들 수 있습니다. 역대하 20장 11절부터 13절입니다.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위기의 시기에 염려의 자리가 아니라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입니다. 이 자리를 지킴으로써 내일을 향한 찬란한 빛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