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룻기 1장 19~21절]
19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룻기 4장 14~17절]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받은 말씀
살다보면 앞이 캄캄하고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주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암담함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지경에 이러렀나, 난 과연 다시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내게도 미래가 있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룻기의 나오미도 그랬을 것으로 보입니다. 흉년을 맞아 살길을 찾아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모압으로 떠난 것이 잘못된 일인가, 아니면 두 아들을 모압 여인에게 장가를 보낸 것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나 하며 자책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를 이웃이 비웃기도 했습니다. (1장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단순한 불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인가 갈등하기도 하고 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런 나오미에게도 다시 회복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며느리인 룻을 보아스에게 재혼을 보내고 보아스와 룻 사이를 통해 손주도 얻었습니다. 바로 디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입니다. 손주를 안은 그녀를 보고 이웃들은 축복하기도 했습니다. (4장입니다)
그럼 나락으로 떨어졌던 나오미가 어떻게 다시 회복의 길로 나아갔으며, 앞이 캄캄한 시련에 처한 우리가 어떻게 그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1.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1장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다가 다시 베들레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흉년을 맞아 도망치듯 모압으로 피해 간 나오미 가족에게 주어진 시련은 하나님의 징계였음을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였을까요? 그것은 자기 소견대로 살던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고는 단순한 징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라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는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그 회초리는 단순히 아이를 아프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르게 살라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그런 부모는 싫다며 도망쳐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징계도 그런 사랑의 회초리임을 깨닫고 우리는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무리 앞이 캄캄하고 암담하더라도 내겐 돌아갈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련이 하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러운 삶 때문이었다 여겨지더라도 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가 주신 영광의 은혜가 넘칠 때에도 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겠다는 미음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의 형편을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2.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연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뭔가 잘못 되었을 때도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예상치 못한 횡재를 얻게 되었을 때도 우리는 좋은 우연이라고 여기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우연을 믿으면 우리에게는 돌아갈 하나님을 찾을 기회가 사라집니다. 악재가 닥칠 때 그것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횡재가 임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고향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나오미는 하나님의 품,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돌아옴 외에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갔습니다. 2장 2절입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그러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우연을 가장해 임합니다. 2장 3절과 4절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울고불고 할 것이 아닙니다. 신세 한탄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묵묵히 일상을 회복하고 묵묵히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일상은 신앙의 일상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삶 회복입니다. 그 신앙생활의 일상이 회복될 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신뢰하고, 하루하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면 되겠습니다.
3. 하나님의 회복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을 회복하고 삶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최종 목적은 완전한 삶의 회복에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믿고 마음에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온갖 비난스런 눈초리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결단하고 돌아온 나오미,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오미 (기쁨, 희락)라 불릴 수 없으니 마라(쓰라림)라 부르는게 마땅하다고 한 나오미, 그리고 속죄하는 자의 모습으로 묵묵히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일상으로 살아온 그녀를 하나님은 다시 완전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대가 끊어질 지경에 이른 그녀에게 손주를 안는 기쁨(나오미)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4장 14절과 15절입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비웃음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나오미가 부러움과 축복을 받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회복되고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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