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510_설교정리_Story가 Spec을 이긴다 (수1:1~2)

서정원 (JELOME) 2026. 5. 10. 22:58

○ 말씀 전문

[여호수아 1장 1~2절]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 받은 말씀

말씀을 준비하면서 일전에 인터넷에서 본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먼저 "리더의 길"이라는 그 글부터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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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지라.

진짜 사자는 결코 먼저 포효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강렬하게 앞을 응시한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리더의 길은 외롭다.

모두가 당신을 바라보고

모두가 당신에게 답을 요구할 때

밤마다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그럴수록 더 깊이 새겨야 한다.

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지라.

 

넘어져도 좋다. 쓰러져도 좋다.

한순간 마음이 약해져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그 한 걸음이 곧 용기이며, 그 용기가 곧 리더십이다.

세상은 포효하는 자를 주목하지만

진짜 강자는 침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다.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보이지 않는 승리를 준비하는 자

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지라.

오늘, 당신의 모든 걸음에 그 힘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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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걸음 위에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능력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자의 심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를 보여줍니다. 모세가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나아가야 하는 여호수아에게는 그 누구 보다도 크다란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의지했던 모세가 죽고 의지할 사람이 사라진 현실 앞에서 참담했을 것이며, 모세처럼 백성들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지도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운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를 떠맡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믿음의 자이언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여호수아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리더십은 ...

 

1. 최고(The best)가 아닌 유일함(The only)으로 승부하라

넘버원(Number 1) 인생은 남보다 비교해서 좀 더 앞선 사람을 말합니다. 반면에 온리원(Only 1) 인생은 남과 비교할 필요없이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호수아는 모세 보다 좀 더 앞서려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모세와는 다른 여호수아 자기만의 리더십을 통해 온리원으로 불려야 할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모세가 죽고 하나님이 그 후임으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2절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여호수아의 시작인 오늘 본문만 하더라도 여호수아란 이름 보다 모세의 이름이 더 많이 나옵니다. 죽었지만 죽은게 아닌 듯한 현실이었습니다.

그가 이끌어야 하는 백성은 장정만 무려 60만 명이었습니다. 부녀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아마도 20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에게 주어지는 압박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람들은 여전히 모세의 영향력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택한 길은, 제2의 모세가 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늘 쫓기게 되고, 부담스러움이 걸림돌이 되어 늘 비교하며 머뭇거리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과 비교해서 우위에 서려는 자세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유니크한 일을 사명으로 삼아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마다 다른 은사를 주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내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 나라의 위한 내 몫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스펙은 특히 직장을 구할 때, 구직을 위한 자격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유독 이 스펙에 집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고,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합니다. 스펙은 일반적인 자격 항목이지 자기만의 스토리는 아닙니다. 세상도 점점 일반적인 스펙보다는 개성을 중시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원래 스펙을 중시하는 곳이 아니라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라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담임목사의 설교말씀으로 보고 정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전하는 목사를 원할까요? 성경 내용을 풀이하듯 설명하는 목사를 원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교인들이 원하는 목사는 '삶을 관통해서 하나님의 흔적을 드러내는 나만의 흔적이 있는 말씀'을 전하는 목사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스토리가 세상의 스펙을 이깁니다. 교회에 몇년 다녔다는 스펙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온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천 규빗 앞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여호수아 앞에 첫번째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는 요단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기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 강을 건너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의 첫 리더십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3장 3절과 4절입니다.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도도하게 흐르는 요단강물 앞에서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향해, 맨 앞에 언약궤를 세우고 그 언약궤를 바라보고 건너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 사람과의 거리를 이천 규빗으로 띄우라고 합니다. 이천 규빗은 1Km정도 됩니다. 너무 다닥다닥 붙어서 가면 앞 사람이 방해가 되어 언약궤를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황과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을 보게 했습니다. 

언약궤 속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 그리고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있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이 세운 리더에 집중하라는 것이고, 만나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만족하라는 것이며, 두 돌판은 그 말씀을 꼭 붙들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떤 난관 속에서도 언약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했습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는 구현우씨의 [말씀이 임하는 사람] 중의 한 대목을 보면 좋겠습니다. "삶에서 폭풍을 만나면 우리가 가진 것이나 알고 있던 것이 십중팔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은 우리 소유나 지식이 얼마나 하찮고 깨어지기 쉬운지를 여실히 드려낼 뿐입니다. 그런 때는 인생의 잔재주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가지고 폭풍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왜 날마다 말씀을 붙들고 읽어야 하는지를 잘 깨우쳐줍니다. 갑작스런 고난이 엄습하면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마음도 가지기 어렵습니다. 성경도 생각나지 않고 기도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고난에 매몰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날마다 말씀을 읽고 그것을 마음에 습관처럼 쌓아두면 그 마음에 새겨두었던 말씀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라 힘이 되어주고 인생을 붙들어줍니다. 

여호수아가 첫 관문인 요단강을 만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라 했듯, 우리도 우리 앞에 다가서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붙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이요 내 길에 이니이다" 말씀이 내 고난, 내 어둠을 비춰주는 등이 되고, 내 갈 길을 비춰주는 빛이 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3. 먼저 내 안의 <여리고>를 무너뜨려라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 앞에 또 다른 장애가 가로막았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 바로 견고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견고하기 그지 없는 여리고성 앞에서 백성들은 또 한번 좌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장애물 앞에서 여호수아는 어떤 온리원 리더십으로 이 난관을 극복했을까요?

하나님은 승리의 비책으로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엿세동안 '침묵하라'였습니다. 또 하나는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외쳐라'였습니다. 여호수아 6장 3절과 4절입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왜 침묵하라고 했을까요? 견고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 돌라고 했을 때, 만약 침묵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옆 사람들과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수근거렸을 것입니다. 미친짓이라며 불평불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럼 일곱째 날에는 왜 일곱바퀴를 돌고 외치라고 했을까요? 칠은 완전수입니다. 침묵하는 날이 완전해졌을 때,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포자기 하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모든 걸 하나님께 맡깁니다'라는 마음이 들 때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방법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상태가 되었을 때 소리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 백성들은 그 견고함,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여리고성 자체를 보고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리고성에 주눅이 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백성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믿음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안에는 여리고성 보다도 더 견고한 성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업에 대한 여리고성, 자녀에 대한 여리고성, 아집과 자아의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여리고성이 먼저 무너져야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한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앙이 좋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 좋은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족들을 향한 분노, 말투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상처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했습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건 내 성격이고 원래 내 성격을 이랬다라고 변명하고 자위했습니다. 어느날 자녀가 아빠에게 "아빠, 아빠는 교회에서는 안 그런데 왜 집에서는 그러세요?" 그 말을 들은 그는 처음으로 이 성격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이건 제 성격문제가 아닙니다. 죄입니다. 이 죄를 무너뜨려주십시오' 그러고 몇달이 흘렀습니다. 가정에는 뚜렷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때 자녀가 "아빠, 우리집이 너무 좋아요. 아빠가 너무 좋아요" 내 안에 견고하다고 느끼고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우리 일터에도 우리 가장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오늘 살펴본 여호수아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글이 있어서 소개하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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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먼지 속에서 그는 늘 한 사람 뒤에 서 있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그림자처럼

말없이 순종하며, 조용히 배우며,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말씀을 더 붙든 사람,

그가 바로 여호수아였다.

 

요단강이 길을 막아설 때 사람들은 물의 깊이를 보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강은 갈라지고 길은 생겨났다.

보이는 길을 따라 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길을 만든 사람.

 

여리고의 높은 성벽 앞에서도

그는 칼을 들지 않았다.

대신 침묵과 순종으로 걸었다.

이해되지 않는 명령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았고

마침내 무너진 것은 성벽이 아니라 인간의 계산이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해가 기울어갈 때 그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멈추라"

불가능해 보이는 기도였지만

그의 하나님은 불가능을 멈추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해는 멈추고 믿음은 승리했다.

 

여호수아, 

그는 길을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따라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고 계신다.

"누가 먼저 발을 내딛겠느냐"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여호수아는 바로 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