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430_설교정리_수요예배_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 에스라 (스7:9~10)_이창륜목사

서정원 (JELOME) 2026. 4. 30. 04:40

○ 말씀 전문

[에스라 7장 9절~10절]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 받은 말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성경 통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여성이 진행하는 성경 방송이 미국 대표적인 오디오 콘텐츠 사이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바탕으로 시작된 방송은 많은 기독인의 신앙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미국 작가인 타라 리 코블이 진행하는 ‘바이블 리캡(The Bible Recap·TBR)’을 조명하는 뉴스가 최근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에 잇따라 보도됐습니다. 애플 팟캐스트 순위 사이트에 따르면 TBR은 전체 부문 2위에 올랐습니다. 코블은 “새해 첫날 전체 부문 1위에 올랐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인스타그램에 “처음 이 방송을 2019년에 시작할 때, 300명 정도가 이 방송을 들을 수 있길 바랐다”면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게 TBR을 성장시켜 주셨다”고 감격해했습니다.

TBR은 청취자와 함께 매일 8분여 간 하루 분량의 성경 읽기를 하는 것이 전부인 방송입니다. 코블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통독에 매번 실패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목회자가 ‘하루 12분씩 투자하면 된다’며 성경 통독을 권유했을 때도 거부감이 컸다는 것, 그는 “성경을 읽다 보면 헷갈리거나 삶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내가 이해한다고 믿는 ‘좋은’ 부분만 읽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시작한 성경 통독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다고 코블은 고백했습니다.

코블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99달러짜리 마이크와 헤드셋을 가지고 2019년 첫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홍보를 위한 광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300명만 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목표가 전부였지만 TBR의 현재 하루 청취자는 10만 명에 달합니다. 스마트폰 등에 TBR 방송을 다운로드한 횟수는 3억3100만 건 이상입니다. 100만 명 이상이 성경 애플리케이션 ‘유버전’에서 TBR로 성경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 통독 노하우에 대해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초마다 ‘하루 몇 장’ 등으로 세운 계획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설령 통독 계획의 열흘치가 밀렸더라도, 당신은 제시간에 맞게 하고 있는 거예요.”

말씀의 능력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 말씀 에스라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

 

1.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면 가까이 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더 깊이 알려고 노력합니다. 에스라가 그랬습니다. 에스라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오늘 말씀 10절입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연구했다는 것은 '다라쉬'인데 '캐다, 파헤치다, 끝까지 추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침 묵상 시간에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그 내용이 단번에 이해되지 않음을 대부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투브를 이용해서 참고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에스라는 스스로 깨우치려고 읽고 또 읽으면서 말씀을 연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학대학 시절, '아나톨레'라는 동아리에 참여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동아리라 그렇게 인기가 있는 동아리는 아니었습니다. 한번에 5~6구절의 말씀을 가지고 최소한 20시간 이상을 그 말씀을 묵상하게 하는 동아리였습니다. 신학생이었지만 처음엔 말씀을 이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20시간을 그 말씀을 붙잡고 늘어질 때,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서서히 붙잡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는 거리와 비례한다고 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보면 대부분 말씀을 가까이 하는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남들을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 말씀 사랑이 그의 능력이 되게 했습니다. 그 능력이 그의 인생을 변화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가까이 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하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영혼의 닻을 내렸습니다.

10절을 한번 더 보겠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준행, 즉 순종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목적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안정을 회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배에게 있어서 항해를 위한 키도 중요하고 돛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요동치거나 흔들리지 않게 하는 닻입니다. 멸망당했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기 이전에 먼저 요동치지 않는 안정이 중요했습니다. 에스라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흔들리지 않는 닻이 필요합니다. 풍랑 속을 헤치고 나오더라도 안주할 수 있는 튼튼한 닻이 필요합니다. 언제든 믿고 붙잡을 수 있는 닻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닿으로 삼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닻으로 삼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과 일터를 삶의 터전이라고 여깁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건강을 닻 삽습니다. 이러한 닻은 그것이 끊어질 때 인생이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에스라가 붙잡았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무장해 두면, 삶에 환란이 찾아오고 고난이 나를 엄습할 때, 그 말씀이 든든한 우리 인생의 닻이 되어 줍니다. 사도행전 27장 22절부터 25절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히브리서 9장 19절과 20절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말씀을 영혼의 닻으로 삼아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의 선한 손을 신뢰했습니다.

먼저 9절을 보겠습니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장장 4개월을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길은 사막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무려 1,500Km에 달하는 길이었습니다. 혼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7,000명을 이끌고 귀환했습니다. 도둑이 득실거리고 맹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어떻게 왔다고 합니까? 주의 선한 도우심의 손길 덕분에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는 어떻게 그 선하신 도움의 손길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연구하여 그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기에 그는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 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올 때, 그는 그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함께 함을 느꼈습니다.

유진소 목사님은 하나님의 손은 4가지의 손을 드러내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① 도우시는 손, ② 잡아주는 손, ③ 만져주시는 손, ④ 인도하시는 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모든 손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치는 것은 우리가 그 손을 놓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도 하루만 지나면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많은 세상 일에 시선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때마다 성경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내 마음에 하나님을 부둥켜 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면서도 더 줄 것이 없는지 둘러보십니다. 명절이 지나고 귀성하는 차량마다 트렁크가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바리바라 싸 준 사랑으로 차량 트렁트가 무겁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분입니다. 성경이 분명이 그것을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 약속의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