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느헤미야 8장 5~6절]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 받은 말씀
오늘도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셉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바울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를 통해 그가 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헤미야는 예수님을 닮은 리더십을 보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리더들에게 권장되는 성경 말씀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위로하신다'입니다. 그를 향해 결점 없는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그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게도 그런 리더가 되기까지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느헤미야는 ...
1. 기도 (Prayer)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성경 말씀이 느헤미야 3장 3절부터 5절입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와 '금식하여 기도하여'입니다. 성벽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가 보인 반응은 '금식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운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이든 변화든 기도할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를 부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표적인 기도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를 듭니다. 사람들은 그를 '낙타무릎 야고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수많은 문제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여 그의 무릎이 마치 낙타의 무릎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낙타의 무릎 모양 뿐만이 아니라 낙타에게는 우리가 영적 레슨으로 삼을 수 있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 낙타는 모래바람이 불어오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 바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다가선 걱정과 문제 앞에서 피하고 도망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②낙타는 주인의 명령을 받기 위해 매일 아침 주인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주인이 짐을 실을 수 있도록 무릎을 꿇습니다. 주인은 낙타마다 얼마나 짐을 질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래서 낙타가 질 수 있는 가장 알맞는 만큼 짐을 지워줍니다. 우리도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무릎 꿇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알맞는 인생을 지워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고,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성령보다 앞서지 않은 사람, 그런 인생을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배(Worship)의 사람이었습니다
삶이 무너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예배에서 무너진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너진 삶이 회복되려면 예배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세운 곳이 어딘지를 보면 그가 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 1절입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양문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양문은 제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양을 잡고, 염소를 잡고, 소를 잡아 준비하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예배의 시작을 뜻합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성벽공사가 아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를 회복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배를 회복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느헤미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일컫게 했습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예배 회복을 꽤한 사람으로 야곱을 들 수 있습니다. 야곱의 딸이 이방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야곱의 아들들이 그 강간자를 깔로 찔러 죽여 범죄자가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야곱이 찾은 곳은 예배였습니다. 창세기 35장 3절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무너졌다고 여겨질 때, 속수무책에 놓여졌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예배를 돌아보고 그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다시 세울 때, 우리의 가정도, 직장도, 삶도 다시 세워집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일까? 그냥 주일에 교회에 열심이 나가 예배를 드리는 주일 성수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토미 테니의 [다윗의 장막]이라는 책에 '예배를 세운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예배, 좋은 찬양, 좋은 설교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 분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지만,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의 깊은 갈망을 만족시키다. 당신의 위엄을 지키면서 그 분의 임재를 바라볼 수는 없다. 당신의 체면을 지키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수는 없다. 가장 높은 차원의 예배는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예배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 분을 만나야 한다."
새로운 한 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말씀(Word)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우리는 그의 기도의 흔적, 예배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말씀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 2절과 3절입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으게 한 후,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그러자 나온 반응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 5절과 6절입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는 성벽재건 후 왜 백성들을 다 모아서 말씀을 듣게 했을까? 튼튼한 성벽을 통한 안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완벽한 방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적인 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 부흥, 영적 재건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짜로 나아가야 할 길은 성벽을 통한 안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의 삶에서 돈은 안위를 위한 수단 중의 하나일 뿐,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합니다.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일으켜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붙드는 자, 그런 자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도 같은 꿈을 꿉니다. 교회 새 건물로 부흥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 교회 내에 하나님의 말씀이 요동치고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그럴 때 진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제 인생에 관통했던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신학생 시절 예배당 맨 뒤, 기둥 곁에서 들었던 말씀이지만 제 마음을 그대로 관통했었고 지금도 말씀의 지주로 삼고 있습니다. 예례미야 12장 5절입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모습, 기도도 정말 잘 하고, 설교도 정말 잘 하고, 운동도 정말 잘 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을 따라가기도 벅찬 학창시절이었습니다. 정말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고 낙오할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때 전 결단했습니다. 나의 판단은 그럴지라도 나는 오늘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고 믿기를 결단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나의 길을 내신 하나님이 마무리까지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어떻게 인도해 가실까? 느헤미야 2장 8절입니다.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기도의 사람, 예배의 사람,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임하여 와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새로운 한 주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아가는 힘찬 발길을 내닫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에 딱 맞는 찬송이 생각나 함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하나님은 아직도 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세상에서 답을 찾지 말아라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가 있다
기도를 쉬지마라 찬양을 멈추지마라
하나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다
예배에 집중하라 말씀을 붙잡아라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소망일세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하나님은 아직도 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세상에서 답을 찾지 말아라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가 있다
가던 길을 멈추지마라 뒤를 돌아보지마라
하나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다
의심을 하지마라 절대 포기하지마라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 것이다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소망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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