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405_설교정리_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믿음이다 (막16:12~14)

서정원 (JELOME) 2026. 4. 6. 00:59

○ 말씀 전문

[마가복음 16장 12~14절]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 받은 말씀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교회로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 중에는 온전한 믿음으로 참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자신 조차도 믿음에 대한 확신 없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 몸부림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믿음 없이 배우자나 부모의 등살에 눈치를 살피며 억지로 나와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모습과 상태로 예배를 드리든 예배의 자리에 나와 앉아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축복받는 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삶이 가장 큰 축복의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가 아니라 믿음있는 자가 되어 예배드리고 살아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두 제자와 십자가 못자국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 도마의 믿음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들을 통헤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레마의 렛슨은 무엇일까요...

 

1.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은 도마를 말할 때 '의심많은 도마'라고 합니다. 도마에게는 원래 '디두모'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디두모'는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를 부를 때 '디두모 도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성경은 그를 '의심많은 도마'라고 불렀습니다. 왜 성경은 그의 별명을 다르게 불렀을까요? 거기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번에 걸쳐 제자들이 모신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을 직접 대면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는 주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두 번의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주님이 다녀가신 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들은 도마는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왜 도마만 끝까지 믿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신앙의 첫발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500명이었지만,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자리를 지킨 120명만이 성령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윗의 생에서 가장 수치스런 실패는 밧세바를 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전쟁터에서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려나가는 진정한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밧세바를 취하게 되는 그 때는 왠지 그는 직접 전장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자 밧세바를 범하는 그런 실패의 자리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사무엘하 11장 1절입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교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신앙의 여정은 자리싸움입니다.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 있을 때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경건과 거룩의 기본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있는 것입니다. 비단 신앙생활만이 아닙니다. 아내가 아내의 잘 지켜야 하고, 남편이 남편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을 때, 가정도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불륜이 생기고, 자기 자리에 있지 못할 때 가정이 무너집니다. 

삶에서도 신앙에서도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잘 지키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한 사람을 위한 주님의 사랑의 흔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번째 만남이 있은 8일 후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26절과 27절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왜 다시 찾아오셨을까? 아마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도마를 위해 찾아오신 것으로 믿습니다. 많은 제자들 중 한 사람 정도야 믿든 믿지 않든 큰 상관이 없었겠지만 주님은 그 마지막 한 명까지도 사랑하시어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그 흉칙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온전히 회복된 깨끗한 모습으로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회복하신 예수님은 창에 찔리셨던 옆구리와 손과 발에 못박히셨던 자국은 그대로 두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믿지 못하고 있는 도마같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흔적을 남겨두시기 위함이라 믿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라고 한 도마같은 사람을 위해 남겨두신 아픈 흔적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 없는 자로 남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쯤 믿음 없어도 상관이 없을 분이신데도 마지막 한 사람인 나까지도 믿음으로 이끄시려고 그 흉한 십자가 흔적을 아직도 지니고 계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흠까지도 지우려고 성형외과를 찾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광의 자리에 있는 지금도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믿음 없는 도마의 자리에 머무러지 않고, 그 흔적을 확인한 도마의 믿음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3.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엠마오 도상에서 함께 걸어갔던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레슨입니다. 그들은 같이 걸어가시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예수님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던 흉한 모습과 달랐던지, 아니면 승천하시고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던 모습이었던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달랐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그들이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과 16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눈이 가리어져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기록이 더 사실과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얼굴 자체를 바꾸어 부활하신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적 눈이 기리어졌거나, 사탄이 그들의 영적 눈을 가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과 31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이 떡을 떼시려고 손을 들었을 때 소매가 살짝 밀려내려가는 그 사이로 십자가 못자국이 드러나고, 그제서야 가리워졌던 그들의 영적 눈이 화들짝 뜨졌을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적 눈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하다 싶으면 우리는 이 영적인 눈을 뜨도록 해야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는 것은 가리어진 눈 뒷쪽에 있는 주님을 부르짖는 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부르고 또 불러야 합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싸움터로 나가면서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두 번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은 열 번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내게 주어진 힘듦과 걱정거리만 부르짖으며 기도하며 살지는 않는지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걱정거리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탁보다는 찬양에 더 많은 힘을 쏟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의심많은 과거의 도마가 아니라, 인도까지 주의 사명을 전한 도마와 같은 믿음 있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명기 31장 8절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할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