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329_설교정리_영혼에 종이 울리는 삶을 살라 (막15:10~13)

서정원 (JELOME) 2026. 3. 29. 23:52

○ 말씀 전문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받은 말씀

세계적으로 유명한 흑인 영가 헤이즈는 카루소의 노래를 듣고 있던 중에 '인생에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은혜'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같이 마치 종이 울리는 것 같은 마음의 울림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가슴 뛰게 하는 일이요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갈 길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종을 울리게 하는 십자가 사건의 한 단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도,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름다운 종이 울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고난 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고 기억해야 할 Keyward는 ...

 

1. <거기 너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살라

'2,000년 전에 사신 예수님과 현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한번 쯤은 묻고 답해 봐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 전 오늘의 본문의 자리에는 세 부류의 사람, 정확히 말하면 세 부류의 죄인이 있었습니다. 빌라도와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이들이 왜 죄인이고 어떤 죄인인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로 대변되는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시기심이라는 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 했고, 총독 빌라도는 진리를 외면한 비겁함이라는 죄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예수님을 나귀에 태우고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한 그리스도로 만나지 못한 무지의 죄로 인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2,000년 전 십자가 죽음을 결정한 그 자리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죄악이 그들만의 죄악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우리의 죄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세기에 활동한 화가 램브란트의 화폭에는 그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그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뱀브란트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그가 모든 그림 한 곳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것은, 그 자리에 자기도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2,000전의 오늘 본문 사건이 만약 지금 우리 앞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외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에, 대제사장들의 시기, 빌라도의 진실에 대한 외면, 예수님을 진정한 그리스도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무리의 무지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2,000년 전에 산 예수님과 현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직면해 보면 우리는 2,000년 전의 그 세 부류들 곁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 새로운 종이 울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신 은혜를 묵상하라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예수님의 순종에 의해 결정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결정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결정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인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결정된 일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로마서 5장 8절을 메시지 성경에서는 "우리가 그 분께 아무 쓸모가 없었을 때 이미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돈이 없고 물려줄 재산이 없으면 자식들 앞에 마치 죄인처럼 움츠리게 되는 우리, 직장에서 능력이 부족하면 마치 죄인처럼 뒤로 숨어드는 우리,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내 몸과 마음 속에 이기심과 자아와 교만으로 가득차 있는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택하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시각 장애인인 양진철 목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독한 자폐증에 걸린 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래도 자기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부모님 보다도 더 단단한 사랑으로 자기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또 한 분,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복음이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우리 마음에 새로운 종을 울리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무슨 쓸모가 있어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우릴 불러주셨겠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내 자아의 죽음>을 믿음으로 취하라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면 내 자아를 죽일 것인가?'의 싸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60이나 80이 되면 자기 자아를 죽일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의지나 결심만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는 것이 자아입니다. 그래서 대신 해 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로마서 6장 3절과 4절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합하여'입니다. 다른 단어로 말하면 '동일시 되어'입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합하여, 동일시 되어 장사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우리의 자아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과 우리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11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결정적 차이를 드러내는 단어는 마지막에 있는 '여길지어다'입니다.

'여길지어다'는 헬라어로 '로기조마이'인데 '간주하다, 결론을 내리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복음과 우리의 복음의 차이는 바로 이 고백의 차이, 믿음의 차이에 있습니다. 그의 복음 자체와 우리가 아는 복음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 자아가 꿈틀거릴 때 그것을 누르고 죽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이미 죽었음을 기억하고,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십자가가 진정한 내 십자가가 됩니다.

한동대 총장으로 계셨던 김영일 총장님 사모님의 간증이 생각납니다. 어느날 총장님이 아주 심한 인격적 모독을 받고 귀가를 했었는데, 사모님은 총장님이 상처받고 낙심할까 크게 걱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총장님은 여전히 잘 드시고 잘 주무셨다고 합니다. 의아한 사모님이 '당신은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밥이 넘어가고 잠이 오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총장님이 툭 던지신 대답 '난 이미 죽었는데 뭐...'

내 자아가 예수님 십자가와 함께 이미 죽었음을 믿음으로 취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