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319_설교정리_수요예배_지하예배당, 나만의 아둘람굴_이신제전도사)_삼상 22:1~2

서정원 (JELOME) 2026. 3. 19. 05:26

○ 말씀 전문

[사무엘상 22장 1~2절]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 받은 말씀

오늘 수요예배를 인도한 이신제 전도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하고 전해주신 말씀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도사님은 주일예배 시간에 몇번 얼굴을 본 적이 있지만,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 분이 우리 교회에 온 것은 3개월 정도 되었으며, 우리 교회로 오기 전 20대에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하 교회 두 곳에서 섬기다가 온 분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사님의 말씀은 우리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그 날의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에 들어선 전도사님은 사무실이 1층에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2층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2층에서 내리고 나서야 사무실이 1층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왕 2층으로 올라온 것 3층 대예배실로 가서 예수님께 출근 신고라도 하고 내려가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대예배실의 뒷쪽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첫성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는데, 그것은 '주님! 저 엘리베이터 타고 왔습니다'였다고 합니다. 그리곤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그때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만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만나면 내가 지나온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고, 세상살이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합니다. 그리곤 내가 지나온 길이 그냥 우연히 살아온 길이 아니라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길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환한 내 인생의 미래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잘 나가던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쫓기다가, 어두운 아둘람 동굴로 숨어들었던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암담하고 비참하게 여겨질 그 아둘람의 삶을 왜 하나님은 다윗에게 경험하게 하셨을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아둘람 굴과 같은 어둠 가운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1.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직 주님만 부르짖게 하십니다

아둘람으로 쫒겨 오기전의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나? 사무엘상 18장 6절과 7절입니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칭송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사울의 시기심에 쫒겨 비참하기 짝이 없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21장 13절입니다.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그리고 그는 아둘람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 인생의 최대의 암흑기였습니다.

그런 비참한 암흑기 속에서 디윗이 택한 것은 좌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주님을 부르짖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동굴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수 많은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눈물로 쓴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습니다. 축축한 동굴을 하나님의 날개로 삼고, 자신을 숨겨주는 피난처로 여겼습니다. 동굴을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길을 아신다"고 친양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캄캄한 어둠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암흑 속에서도 우리는 그것이 내가 주님을 부르짖는 소중한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 아픔의 자리를 통해 우리를 진실한 사명자로 빚으십니다

20대에 중국으로 선교 활동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쩌면 선교를 낭만으로 기대하고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 하얼삔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중국 공안들의 감시 속에서 두려움으로 예배를 드리는 탈북민들의 모습을 보고는 선교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른 새벽 지하 교회 문을 두드리는 공안의 출현으로 탈북민은 장롱 속으로, 혹은 침대 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다행히 공안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만 확인하고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떠나가고 안 뒤에도 한참 동안 탈북민의 눈에는 죽음의 공포가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때 하얼삔에서의 경험,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영등포 지하 교회에서 탈북민들의 안착을 돕고 그들의 신앙을 도우면서 겪었던 그 힘든 경험은 나의 사역의 길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사역에 단단한 믿거름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쫒겨 목숨을 부지할수 밖에 없는 사정 속에서도, 그는 자기 안위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준 자들의 안위도 돌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입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자기 하나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은 400명의 안위까지도 맡기셨습니다. 그를 자기만 죽으면 끝나지 않음을 깨닫게 하셨고, 400명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을 통해 그를 더욱 단단한 사명자로 만들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혹시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 나를 위한 가장 위대한 훈련의 자리로 바꾸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명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3. 동굴의 시간은, 찬란한 영광으로 이끄시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이 아둘람 동굴의 삶이 훗날 다윗을 지치고 힘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루만져주는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아둘람의 치욕을 견뎌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둘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아픔을 토로하고 부르짖었던 곳이 아둘람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아픔, 아내나 가족에게조차 터놓고 하소연하지 못하는 힘들고 아픈 자신을 맘껏 토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처음 우리 교회에 발을 내딛었을 때 ' 주님! 저 엘리베이터 타고 왔습니다' 6년 이상을 지하 교회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저를 붙잡고 견디게 해주신 하나님께 솔직한 아픔의 과거를 터놓을 수 있었던 교회가, 우리에게는 늘 열려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어떤 치욕과 곤욕과 아픔 속에서도 죄절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