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322_설교정리_나의 소중한 보물들 (막15:25~27)

서정원 (JELOME) 2026. 3. 22. 23:01

○ 말씀 전문

[마가복음 15장 25~27절]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 받은 말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보물]이라는 찬양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가사 중에는 8가지 보물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 가사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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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 속한 자

하나님 안에 사는 자

하나님 주시는 귀한 보물 있으니​

보석 보다 빛나고 정금보다 귀한 것

구원의 은혜 , 생명의 말씀,

영광의 찬양 , 간절한 기도,

정금같은 믿음 , 하늘의 소망,

고난 중 감사 , 십자가 복음

나의 보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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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덞가지의 보물이 우리 모두의 보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보물 중의 보물인 십자가 복음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 귀한 보물을 놓치지 않고 그 소중함에 눈 뜨기 위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건강한 복음주의적 신학에 눈 뜰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복음서적 중에서 가장 인기있고 잘 알려져 있는 작가가 쓴 복음서를 찾아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복음서적은 대부분 가장 이성적이고 지식적으로 기술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펴낸 복음서들이었습니다. 그분의 서적을 읽고 혹한 저는 그분의 사역 현장이 얼마나 멋지게 실현되어 있을까도 궁금했고, 결국 그가 사역하는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서적과는 동떨어지게, 그분의 사역장은 형편없는 모습으로 무너져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다시 복음서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쓰신 존스토트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복음주의 사상을 철저히 실현하고 계시던 이동원 목사님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에게 사역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진짜 복음을 따라 사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알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신앙과 신학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신학이 지도라면 신앙은 길이다" 길만 따라가다 보면 큰 방향을 놓칠수도 있습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진 길만 바라보고 간다면 잘못된 곳에서 헤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는 복음주의적 신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건강한 신학과 건강한 신앙 위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생활에서만 거룩하게 세워지는 것이 아니리 일상적이고 세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구별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게 기대하는 목적 지향의 신학에, 그 길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이 균형있게 발맞춰 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거룩한 낭비(사랑)에 눈 뜰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26절과 27절입니다.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머리에 유대인의 왕이라 쓴 가시관을 씌웠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강도들과 나란히 십자가에 매단 치욕을 덮어 쓰웠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그 이후의 상황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0절부터 43절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두 강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상세하게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저주한 사람은 게스타트라는 흉악범이고, 예수님의 긍휼을 구한 사람은 디스마스란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한 게스타트는 새들이 눈을 쪼아먹는 죽음을 맞이했고, 디스마스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총 6시간 정도라고 추정들 합니다. 이 6시간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이 마지막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예수님은 한 강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셨습니다. 그것은 과연 낭비였을까요? 내 인생에 만약 6시간이라는 시한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할까요?

마지막 6시간까지도 한 영혼을 구원하려고 자기의 마지막까지도 쓰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라면 내게도 모든 것을 낭비해주시겠구나 싶지 않습니까? 그 그룩한 예수님의 낭비아닌 사랑에 눈 뜰 수 있다면, 마지막 시간 그 황금같은 시간을 나를 위해 허비해주실 주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예수님의 거룩한 낭비를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 거룩한 희생에 대해서 눈 뜰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선택해야 할 시기에, 아버지의 반대로 일반 대학에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낙방했으며 2차로 지원한 것이 신학대학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신학대학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꿈에 나타난 예수님의 십자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꿈에 나타난 예수님의 십자가 모습은, 발에 대못을 박을 때 예수님이 움찔하며 발목을 피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나타났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에 못을 박을 때 피하듯 반응하셨던 그 모습을 보고는 그 분도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피하고 싶어하셨는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감수하신 그 분의 거룩한 희생이 내게 신학대학을 택하게 했었습니다.

본문 33절과 34절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이라"을 보면서 그 절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잔인한 모습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2절부터 34절입니다.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럼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 거룩한 희생이 단지 희생으로 끝나기를 원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한 희생에는 거룩한 콜링이 있습니다. 이 콜링은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에 제대로 눈 뜬 자에게만 보입니다. 동물의 뼈를 매단 채찍으로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맞으면서도 거룩한 희생을 하신 예수님, 그 채찍을 맞아도 좋을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분의 희생 앞에 우리가 진짜 그 희생에 눈을 뜬다면, 우리는 절로 "왜 그러셨나요?" 라는 통한의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희생에 응답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를 향한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 나를 위한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이, 나에게 은혜로 주어진 진정한 보물임을 깨닫고 기억하며 그 은혜를 주신 주님에게 보답으로 응답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