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마가복음 15장 21정~23절]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 받은 말씀
예수님이 붙잡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견디다 못해 예수님이 몇번이고 넘어져, 더 이상 나아가기가 어렵겠다라고 판단한 호송군들이, 그 시몬을 강제로 붙잡아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작은 소동 장면에 불과하지만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곳곳에서 그로 인해 일어난 연관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기록하시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은 무엇일까?
골고다 언덕에서 짧은 시간에 예수님을 만난 시몬에게는, 이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인해 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을 만난 시몬이 어떤 만남을 가졌기에 인생을 송두리채 바뀌는 계기가 되었을까? 이 만남을 통해 그에게는 어떤 변화와 결과가 있었을까?
1. 가슴(마음)으로 만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마법에는 징발권이라는 특별한 법이 있었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강제로 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자 호송군들은 시몬에게 그 징발권을 발동했습니다. 떠밀리듯 강제로 동원된 그에게는 악몽같은 일이었고 저주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시몬은 이 아픈 기억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의 피투성이 얼굴을 잊어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십자가를 대신 지는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던 예수님의 그 눈길이 뚜렷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가 느꼈던 저주감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가슴으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리스도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떨결에 만났던 예수님을 드디어 가슴으로 그리스도로 만났습니다.
이 가슴으로 만난 시몬에게 그 만남은 서서히 은혜로 다가오고, 감사로 다가오고, 축복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짧은 만남이 가슴으로 만난 만남이 되자 그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복음으로 그의 아내와 아들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안디옥 교회의 리더가 되어 다시 성경에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16장 1절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바로 시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내와 아들들에게로 흘러갑니다. 성경은 그의 이름 뿐만 아니라 아들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그들의 이름은 로마서 16장 13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격적으로 만나고 가슴으로 만난 사람들의 무수한 간증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런 은혜의 간증이 내게는 왜 일어나지 않을까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 상식적인 선에서만 예수님을 소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가슴으로 만나게 되면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내 가족, 내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내리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한주 예수님을 가슴으로 만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약한 가운데 만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몬은 특별한 사람이라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디아스포라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구레네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구레네라는 곳은 우상이 들끓고 황제 숭배가 만연했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주류들이 예루살렘에 살았다면, 구레네에 산 그의 신세는 보잘것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혈통은 흑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에는 핸디캡이 너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지는 귀한 사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리더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저주를 받은 것 같다고 여길 정도로 믿음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연약하기 그지 없던 시기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별볼것 없는 자들이 택함 받는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열 두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하찮게 여겨지던 어부들을 불러 제자로 삼았으며, 못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를 불러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헌금을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강대상에 서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제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약해도 부족해도 하나님은 불러서 써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믿음이 약하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아직도 세상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고 주저앉을 필요도 없습니다. 내 사업이 어려운 가운데 있는 것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며 의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 응답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연약함에도 부족함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라보고,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약함 가운데서 실패로 행하는 길이 아니라, 약함 속에서도 나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아 살아가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만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오늘의 장면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독특한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21절을 세심하게 한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바로 '마침'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마침은 원어로는 '카이'입니다. '카이'는 '그리고'라는 뜻도 있고, '마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카이'를 '마침'으로 범역한 개역개정이 마음에 딱 들어옵니다. '마침'은 '우연히'라고 번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연이라 하지 않고 마침이라 번역한 것은, 시몬이 예수님을 골고다에서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임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라 여겨집니다.
나중에 안디옥 교회의 러더가 되고, 성경에 나오는 루포의 아버지가 될 시몬이,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은 것을 우연으로 치부해버리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이끌어가실 때 결코 우연에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 만나는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게 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 섭리를 깨닫는 만남,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 ◇ ◇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만남이 그냥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입술로만 부르짖는 만남이 아니라 진정 가슴으로 만나고 인격적으로 만나는 만남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불신에 빠지고 수시로 자기 의를 내세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살펴보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어가십니다. 이 인도하심을 잊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남을 기억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도 민감하게 귀를 열고 그 섭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아직도 믿음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 이웃들, 지인들이라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새로운 은혜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자일 것입니다. 부끄러운 삶의 모습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서기가 주저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은 연약함 속에서도, 부족함 속에 있는 사람까지도 만나 귀하게 쓰시는 분임을 알고 주저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귀한 말씀을 주시고 저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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