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60308_설교정리_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 (막15:1~3)

서정원 (JELOME) 2026. 3. 8. 19:57

○ 말씀 전문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 받은 말씀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복효근의 시 "안개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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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인해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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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거드는 안개라도 좋다'는 말이 너무 좋습니다. 얼마나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며 겸손한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키워드도 바로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겸손 속에 인생의 가치가 있고 복음의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예수님의 겸손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

 

1.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겸손은 낮아짐, 섬김의 마음과 연결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의 배경에는 그의 모습이 전혀 왕 같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는 왕관도 없고 타고 다니는 명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봐 온 세상의 그 어떤 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왕은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도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30세에 공생애를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요단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강 중에서 그 분은 요단강으로 가셔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알다시피 요단강은 지질학적으로 지중해의 해면보다 낮은 곳을 흐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땅 보다도 낮은 곳에 있는 강이 요단강입니다. 이곳에서의 침례를 통해 예수님은 비우고 낮아짐으로서 겸손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의 마음도 이 겸손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겸손이 성품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부산의 모 목사님의 갑질 파문이 기독교 내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모든 목사들은 다 처음에는 겸손한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교회가 커지면 교만해지는 목사들이 간혹 있습니다. 개척 목사들을 하찮게 여기고 하대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마져도 겸손을 지키고 성품화 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7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두 대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사탄이고 또 하나는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만을 죽이고 겸손을 살리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2. 파워는 한 사람이 상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빌라도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를 놀랍게 여겼습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은 그 형색으로 봐서는 전혀 왕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힘은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왕은 그 힘과 능력을 어떻게 쓰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놀랄 정도로 힘과 능력과 권력을 제대로 쓰신 것입니다. 이 힘과 능력을 제대로 쓴 사람으로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려가 온갖 고생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뭄을 이기지 못해 찾아온 그의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형들에게 '이제 두고봐라'라는 심정으로 화풀이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0장 19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그리고 21절a입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그는 형제들을 만나면서 더 큰 권위자인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복수가 아니라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를 더욱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권력과 힘을 갖게 한 것을 원수 갚고 화풀이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섬기라고 주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주어진 권력과 힘을 내 복수, 내 욕심을 위해 휘두르는 것은 그것을 잘 쓰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의 노예가 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겸손함으로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힘과 능력과 권력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건강한 몸도 힘이고 능력입니다. 가정을 가진 것도 권력입니다. 직장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것에도 주어진 힘과 능력과 권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내 욕심과 사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이전에 겸손으로 섬기는 삶을 택하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 더욱 존경스러운 가장, 존경받는 상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든 작든 주신 그 능력과 권한을 어디에 어떻게 쓴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진정한 파워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대표적 성품인 겸손함으로 살아가고, 내게 주어진 힘과 능력과 권력을 나의 신앙과 성품을 성숙하게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힘과 능력을 어디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일까요.

그것을 배우가 위해 절대권력자인 하나님은 그 능력과 힘을 어디에 쓰셨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데 사용하셨다는 것을 요셉은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하나님 자체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5절입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길을 가신 것은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란듯이 사는 것이 능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십자가를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능력과 우리가 보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이 능력이라 하고 권력이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능력은 자기를 내려놓고 한 존재를 살리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뜻을 내려놓고, 비우고, 겸손하게 섬기며 그 영혼을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헛헛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힘과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 사는 것은 부자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자로 사는 것 만이 아닙니다. '티'없이 사는 인생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라고 부자 티를 내며 갑질하는 사람, 가난하다고 가난한 티를 내며 막무가내로 사는 것은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불쌍한 인생이고, 하나님의 외면을 받는 삶입니다. 그 어떤 내색 없이 겸손한 자세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이 잘 사는 삶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