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0707_설교정리_후회없는 선택을 위한 3가지 비결 (창13:8~10)

서정원 (JELOME) 2024. 7. 8. 06:14

○ 말씀 전문

[창세기 13장 8~10절]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 받은 말씀

인디언 추장의 지혜에 대해 언젠가 한번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지혜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이 났습니다. 요약하면,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싸움은 또한 나이 어린 손자의 마음 속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추장은 궁금해 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간단하게 답하였습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우리에게도 마음 속에 두 늑대의 싸움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듯 합니다. 인디언 추장의 말처럼 우리 마음속에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가'가 그 하루를 결정하고 그 달을 결정하며 종래에는 일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권력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재물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명예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세상 안일함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게으름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교만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욕심의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정답을 알면서도 피해가지 못하는 우매함은 너도 나도, 세상도, 어쩌면 악한 늑대의 요소들이 판을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가슴에 담아, 하느님의 뜻을 담아, 흘러가는 매일의 순간순간이 거룩한 선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인생에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상기하게 해줍니다. 롯은 어떤 선택을 했기에 패망의 길로 나아갔으며, 아브람은 어떤 선택을 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왜 그들의 선택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낳았는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왜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요?

 

1. 미래를 바라보는 자신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돕는 손

그림은 에밀 라누가 그린 [돕는 손]이란 작품입니다. 손녀는 자신이 노를 저어가는 줄 알고 기뻐하지만 실상은 할아버지의 더 큰 손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힘으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 뒤에는 우리를 돕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롯이 많은 부를 갖게 된 데는 전적으로 삼촌인 아브람의 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그 손길과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롯의 잘못된 선택은, 첫째는 지금 자신이 누리는 부가 어디에 기인된 것인지를 몰랐다는 것, 둘째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자신감은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브람이 선택에 대한 우선권을 주자, 발 뒷꿈치를 들고 둘러본 다음, 자기 생각에 이득이 될 것 같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선택했던 거십니다.

반면에 아브람은 롯이 가진 부도 자신으로 인해 얻게 된 것임을 알고도,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선택보다 중요한 것,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과 어떤 언약 관계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미래를 바라보는 자신감은 자기 자신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2장 8절입니다.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 한주도 하나님의 선한 손이 가정과 일터에 언제나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나의 현재가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를 알고 미래도 그 하나님을 통해 승리의 결과를 이루어간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2.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는 것은 발뒥꿈치를 들고 바라보았다는 뜻이며, 그것은 자기의 욕심, 어디가 자신에게 이득이 될까를 살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심의 눈으로 바라보니 망할 소돔과 고모라도 에덴동산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람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14절과 15절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이 스스로 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보게 하신 곳을 보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려고 하면 롯의 길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고 읽혀지는 대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인디언 추장의 말처럼 우리 안에는 악한 사자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제어하고 믿음의 눈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가능함을 알고, 믿음 안에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롯의 비전은 오로지 성공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람의 비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 찾기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비전을 빨리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억지로 만드려고 하다 보면 잘못된 비전을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총리가 되겠다는 비전을 명확히 하고 도전해서 그 비전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그의 형들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자기의 비전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창세기 42장 9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형들이 찾아왔을 때 옛날 어린시절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던 것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Then he rememberd his dreams. Then 그제서야 깨달았고, 그 전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비전을 붙잡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갖고 살아오다 보니 그 비전이 자연히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8절과 9절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 자신이 좌나 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왜나하면 그 하나님이 그의 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에게 비전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금 여기에 두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를 여기에 두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참다운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남의 자리를 보고 내가 저곳에 있어야 하는데, 혹은 저 일이 내가 할 일인데 라고 생각하며 사는 자는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은 모자이크와 같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하 내 인생이 그런 그림이었구나, 내 삶의 큰 그림, 밑그림을 그리시느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라고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구상해셨던 그 그림을 완성해 주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비전도 중요하지만, 내 비전을 설계하시고 이루어가시는 그 하나님께 내가 비전을 둘 때 우리는 바른 선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