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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_QT_C_시편84편_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서정원 (JELOME) 2024. 3. 27. 09:31

○ 말씀 전문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묵상

2005년 12월 25일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내만 교회에 다니고 나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자동차로 아내를 교회에까지 태워다 주고는 차 안에서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태워왔습니다. 아내도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다니던 그 교회에 주차장이 없어서 주변 도로에 세워야 했는데 워낙 주차 환경이 열악한 지역이라서 빈 공간을 찾다 보면 예배 시간에 늦을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일요일 마다 운전사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3년 정도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교회라는 건물이 내게는 너무나 이질적이었습니다. 심하게 비유하면 꼭 무당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마음으로 아내에게 나도 오늘부터 교회에 다니겠다고 선언을 하고는 아내를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교회 안은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인도하시는 분들의 찬송가도 뭔가 마음과 자세를 바르게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예배실로 들어서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들어와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마디로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도 기도를 드리고 예배 시작을 기다렸다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교회를 나선 후에도 옷에 향수가 배인 것처럼 뭔가 마음에 경건함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 했습니다. 성수로 목욕을 한 것 같은 느낌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근 20년이 흘렀습니다.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던 그 때에 비해 교회는 더 이상 이질적인 곳이 아닙니다. 꼭 내 집에 발을 들여놓 듯, 오랫동안 다닌 직장에 출근한 듯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교회에 익숙하게 된 것이 좋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과 같은 느낌은 나에게 예배에 대한 가벼움, 기도에 대한 형식적인 마인드, 찬양에 대한 거룩함의 부족을 가져다 준 듯 합니다. 처음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예배시간을 기다리던 그 엄숙함과 거룩함이 사라진 듯 합니다. 신앙에서 익숙함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이구나 싶습니다.

새해가 되면 교회에서는 특별새벽기도를 일주일간 시작합니다. 일년 내내 교회에서 새벽기도회가 있는데 굳이 특별새벽기도 주간이라고 정해서 실시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상가 건물을 임대하여 교회를 창립했기에 성도가 늘어나자 공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중보기도실을 만들어서 운영합니다. 그 공간을 청소년이나 유아 예배실로 이용하고 기도는 예배실 같은 데서 해도 될 텐데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같은 목장에서 함께 섬기던 한 집사님이 새로 이사를 갔는데, 새로 들어간 집에 그동안 꿈꾸었던 기도실을 마련했다며 좋아하던 모습을 보고는 뭘 굳이 집에 기도공간까지 별도로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특별새벽기도회가 필요한지, 불충분한 공간 속에서도 왜 중보기도실을 가지고 가는지, 왜 그 집사님이 그토록 집에 기도 공간 갖기를 소망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일상화 익숙함이 신앙 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점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84편을 시작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주의 장막이 그 어느 곳과 구별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 공간은 그가 사모하는 공간이고 경건하고 거룩한 공간입니다. 그 구별되게 느껴진 공간에 발을 내딛으면서 그는 행복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이 구별됨, 익숙함의 경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들어서면서 그냥 익숙해진 마음으로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고 마음을 가다듬고 익숙함을 털고 들어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동행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자세와 마음과 사랑과 집중과 장중함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회복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그러는 사이에 소중했던 과거의 것들을 자꾸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 잘 살겠다는 데만 몰두해서 가족들과의 사랑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더 높은 직위로 오르겠다는 마음이 앞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뒤질까 염려하며 살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에서 잃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들도 있습니다. 익숙함도 중요하지만 익숙함 때문에 잃게 되는 것들도 있음을 기억하고 늘 새로운 마음을 갖고 그 익숙함을 떨쳐버리며 날마다 새로움의 삶을 사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갔을 때의 그 첫사랑을 회복해 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첫사랑을 잃은 것이 익숙해짐에 따른 부작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신앙 생활에서 익숙함이 찾아들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하고 섬기게 하옵소서.

날마다 반복되는 형식적인 묵상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일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묵상, 주일마다 새로운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삶이 예배이기를 원합니다. 제 삶이 익숙함에 젖어 형식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익숙해진 제 성격으로 고착된 모습이 아니라, 늘 새롭게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