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QT_C/신앙_QT_C_욥기

231114_QT_C_욥기34장_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서정원 (JELOME) 2023. 11. 14. 07:03

○ 말씀전문

1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14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15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16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18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20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21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25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26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27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28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30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33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 묵상

엘리후의 변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선 그의 말이 진리이고 정당하다는 측면에서 오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엘리후의 주장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든 못 사는 사람이든 천민이든 고관대작이든 어느 누구에게도 공평하고 공의로운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불의를 행하시거나 불의에 눈 감는 분이라면 더 이상 하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롭고 정의로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다음 주장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은 또한 통치에 자유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이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구속받거나 간섭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이 세상을 자유롭게 통치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일이 발생하더라도 결코 하나님을 탓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맏기고 신뢰하며 그 공의와 정의의 드러내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엘리후의 하나님에 대한 Definition, 즉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은 세상을 자기 뜻대로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엘리후의 말을 수긍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아침에 엘리후의 말이 진리이고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자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계적인 분이 아닙니다. 공의와 정의 외에 중요한 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공의와 정의에 곁들여 있어야 할 인애요 사랑입니다. 시편 85편 10절을 보겠습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것은 우리가 화평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화평함에는 인애와 진리가 함께 해야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엘리후가 주인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믿고 살아야 하고, 비록 불공평하다 느껴지는 것이 생기더라도 그 하나님이 언젠가는 반드시 공의와 정의를 드러내실 것이며, 지금은 그 하나님의 이루어가심을 믿고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 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엘리후의 위로는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엘리후가 욥을 향해 주장하는 하나님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공의와 정의만으로 평안한 세상이 이루어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애가 함께 해야 합니다. 아내의 주장이 비록 이치에 어긋난 무리한 주장이라 여겨지더라도 그녀의 지금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부부 간의 화목을 이루고 가정의 평안을 가져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엘리후의 말도 맞고, 욥을 향한 그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맞습니다. 엘리후의 말도 세상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배척하지 않고, 또 그에게 인애라는 것이 덧붙여졌다면 금상첨화였겠다 싶은 마음도 맞습니다. 사람마다 인생을 해석하는 방법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더욱 다른 사람들의 사고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과 처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공의와 정의를 밑바탕으로 깔고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에 유독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공의와 정의를 바탕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것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도 있고,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며 살 때도 많습니다. 더구나 남을 정죄하는 마음으로 살 때도 많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부끄럽지 않도록,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끝까지 하나님의 기대를 생각하며 조금씩 이나마 성숙해 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