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QT_C/신앙_QT_C_욥기

231115_QT_C_욥기35장_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서정원 (JELOME) 2023. 11. 15. 06:38

○ 말씀전문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 묵상

세 친구의 위로 아닌 충고에 변론했던 욥에 대해 엘리후가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엘리후도 갈수록 세 친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말을 하다 보면 점점 더 자기를 드러내려는 인간의 개인적 욕망이 나타납니다. 엘리후는 욥의 말을, 사실과 그 이면에 있는 참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고 곡해하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엘리후가 욥에 대해 한 첫번째 오해와 착각은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런 적이 전혀 없는데도 엘리후는 자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욥의 의중과 말과는 상관 없이 욥을 몰아붙입니다.

그리고 엘리후의 두번째 억지는 '네가 의를 행하든 악을 행하든 하나님께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악담을 합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엘리후의 말은 성경이 말하는 근본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시고 일희일비 하시는 분입니다. 

세번째의 엘리후의 오해와 착각은 '네가 아무리 부르짖어 봤자 너는 악한 자이므로 하나님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시지 않을 텐데 어리석게 부르짖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더러 아무리 울부짖어도 반응하시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엘리후의 모습입니다.

세 친구들의 위로, 엘리후의 충고는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 모두는 일반론적인 권선징악 논리만을 내세울 뿐이며, 자기 스스로의 지혜를 드러내려는 마음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아픈 사람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위로하는 궁극적인 방법을 재고해 봐야 하겠습니다. 남을 위로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를 할 것인지 고민하고 대화합니다. 그것 보다는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자세는 자칫 나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할까 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모습이므로, 나를 드러내려는 것을 자제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힘든 자에게 위로를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칫 말이 더 상처를 가져다 줄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위로자는 어떤 모습일까를 예수님을 바라보고 배우고 훈련해 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욥처럼 아픈 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로자가 되시고, 저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고, 우리에게는 자기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언연중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자기 드러냄을 죽이고 진정한 위로자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내일로 수능일이 다가왔습니다. 다행히 내일은 날씨가 풀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날씨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도 따스함이 가득하고 안정감을 충만히 하셔서 수험생 모두가 그동안 노력한 만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보살펴주옵소서.

병원마다 환자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잘못 관리하여 망친 몸들 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셔서 아름다운 건강을 회복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간병으로 지친 가족들을 잘 위로하고 힘을 내게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