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50112_설교정리_롬7장이 아닌 롬8장의 그리스도인이 되라 (롬8:1~6)

서정원 (JELOME) 2025. 1. 12. 20:35

○ 말씀 전문

[로마서 8장 1~6절]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받은 말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오징어게임2를 보면 빚덩이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참가자들이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려는 작가의 의도가 녹아 있는 것 같으며, 사람은 변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오늘 본문은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원리 안에서는 변할 수 없지만 복음 안에서는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것도 있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나의 잘못과 단점이 제발 좀 변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7장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8장은 변할 수 있다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8장에서와 같은 변화되고 성숙된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롬7장이 아닌 롬8장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삶의 태도는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 대해서든 지나친 정죄는 성경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그리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정죄의식은 독이 됩니다. 오히려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는 지나친 정죄의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첫째는 역할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충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지쳐서 도저히 더 이상 못하겠다는 좌절감 같은 것입니다. 이 죄책감에 빠지면 올바른 변화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둘째는 관계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마음이 여려서 남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운 성격이라는 상실감, 남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고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마음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변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셋째는 과거의 삶으로 인한 죄책감입니다. 과거에 저지른 과오나 실수에 너무 집착해 있으면 변화의 창으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변화의 삶을 살려면 이러한 지나친 죄책감을 털고 복음의 힘에 기대어야 합니다. 1절과 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나친 정죄에서 자유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매 순간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No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잘못된 유혹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마귀에게 대적하라고 합니다. 우유부단하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내게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두려운 순간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시선을 주님께 두면 그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38절과 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지나친 정죄의식에 나를 가두어두지 말고, 복음 안에서 나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2025년의 삶을 은혜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5절부터 7절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에 따르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친 죄의식이나 죄책감으로 늘 죽고 싶다는 마음, 걱정과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영혼을 더욱 피폐하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반면에 영의 생각에 따르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평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생각에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영의 생각으로 살면 영의 일을 이룹니다. 영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육의 일은 무엇이고 영의 일은 어떤 것일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그것을 잘 구분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은 19절부터 21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에서, 영의 일은 22절부터 25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해에 우리가 누구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행여 육신의 생각으로 육신의 일을 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추상미씨의 고백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맞아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있었을 때, 살고 있는 1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딱 죽기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심리학에 따르면 생각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행히 추상미씨는 그런 생각이 들고는 전날 밤의 불면증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꿈인지 환상인지 하나님이 나타나 “나는 네 아버지다” 라고 3번에 걸쳐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 음성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롬7장이 아니라 롬8장의 삶을 살게 되려면 영의 음성에 민감하고, 영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음성으로 살아가는 복된 2025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육이 아닌 영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이 강하다는 것은 영이 민감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피부가 민감하다고 건강한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영이 강한 사람은 어떤 사림일까? 12절부터 1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영이 혼을 다스리고, 혼이 육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질서를 어지럽히고 타락하게 되면 순서가 꼬이게 됩니다. 창조질서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 야식을 먹지 말아야지 하는 지령을 영이 내리지만 몸은 이미 반항하여 야식을 먹고 있습니다. 기도보다 넷플릭스를 더 가까이 하는 것, 예배보다 집에 앉아서 거으름을 피우는 것, 이러한 삶은 육이 강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영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이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처방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 했습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이 강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도움을 열심히 구하여 영이 강한 사람이 되어서 성공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공하게 되면 일상이 바빠지고, 일상이 바빠지면 기도와 말씀을 등한시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가할 때든, 바쁜 때든 늘 기도와 말씀에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영이 강해질 때 우리는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이 강해져서 2025년에는 소망하는 변화를 모두 이루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