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로마서 9장 1절~2절]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 받은 말씀
지미 카트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보다도, 퇴임 이후가 더 빛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음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은 그의 인격 때문이다. 인격이 직함이나 권력보다 강함을 그를 통해 배웠다" 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권력을 쥐고 있는 아버지보다는 아버지다운 아버지, 엄마다운 엄마가 좋은 부모입니다. 어떤 목사가 좋은 목사일까? 목사다운 목사가 존경받는 목사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성도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성도일까? 바로 성도다운 성도,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그것을 깨닫고, 2025년을 승리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성도다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1. '나의 은혜'에서 '우리의 은혜'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우리는 잃고 나만이 남은 사회'라고 평하는 것을 봤습니다. 듣기 거북한 말이겠지만 안타까운 현실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성숙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나를 보는 눈에서 우리를 보는 눈으로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기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의 본문 9장에 와서, 민족과 동족에 대한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3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지난해 12월 안식월을 보내면서 그간 내가 받았던 하나님의 고마운 은혜들을 되돌아 보고 연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일어난 탄핵, 계엄, 제주항공사건 등은 나의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하였고, 이 나라를 위해 꿇어 기도할 수 밖에 없게 했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일말의 지식도 없고 간섭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라고 여겼습니다. 내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할 때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지미 카트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전직 대통령들이 다같이 참석하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위정자들 모습과 겹쳐지면서 우리 나라가 가진 아픈 모습으로 대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비단 우리 나라 위정자들만 그럴까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우릴 잃어버리고 나만 생각하는 현실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일까요?
우리는 '나'를 넘어서서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숙해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이 나라를 분란이 아니라 화합의 나라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나의 은혜만을 구하는 성도가 아니라 우리의 은혜를 간구하는 성도다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기도제목만으로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 이웃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우리의 마음(양심)이 성령의 지배를 받게 해야 합니다.
성도다운 성도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쉽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나'에 대한 개념이 워낙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예기치 못한 뺨을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억울하고 화났던 마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스리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내 마음과 양심을 다스려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비결은 '성령안에서' 입니다. 성령의 통치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원래 바울도 유대인들이 싫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지속적으로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유대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삶을 바치게 된 것은, 성령이 그의 마음을 통치하고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의 고백을 에베소서 6장 18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바울도 인간인지라 받은 핍박과 수치를 잊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잊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의 다스림과 통치와 지배 안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2차대전 때에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죄로 온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혹독한 옥고를 치룬 네덜란드의 코리템 여사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룬 것도, 그녀가 하나님의 성령의 강권으로 그녀를 다스리게 하고, 자기 가족을 파멸로 이끈 그 독일 간수를 용서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쓰려서 불면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비록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이지만, 마음은 평강을 얻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와 분노도 다스려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지배와 다스림으로 늘 평강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매순간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머물도록 힘쓰야 합니다.
성도다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지배 안에 나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나를 성령의 지배 안에 있게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을 다시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성령 안에서' 보다 더 앞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단어는 로마서에서만 90번 이상 나옵니다. 성도다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그럼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들으면 듣기는 좋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지 못합니다. 저는 5년 간의 영성일기를 통해 주님 안에 거하는 방법을 체험하고 배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과의 동행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맺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초를 키웁니다. 물을 주고 가꾸는 주인의 손이 없으면 화초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는 커녕 시들어 죽게 됩니다. 그렇게 자란 화초는 아름다운 꽃을 뽐내며 커 갑니다. 주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의 손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습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의 절약정신과 삶에 대한 모습을 회고했습니다. 스쳐가듯 만난 사람들도 일일이 기억해 주는 분이었으며, 작은 지방교회를 평생 섬겼고, 퇴임 후에도 그곳으로 가서 주일학교를 섬긴 할아버지를 추억했습니다. 손자에게는 할아버지가 대통령이셨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소박한 절약정신으로 사신 할아버지, 평생 섬기며 살다 가신 그 할아버지가 더 자랑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카트 대통령의 삶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사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① 제가 오늘 간구해야 할 지혜가 무엇입니까? ②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바로 오늘이 내 인생의 최고의 날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날마다의 기도 제목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내 순주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지위가 놓고 권력이 높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할아버지다운 할아버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통치와 지배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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