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받은 말씀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53억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휴대폰 사용자들은 휴대폰이 가진 수많은 기능 중에서 고작 5% 정도만 알고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입니다.
언젠가 지인과 함께 길을 가다가 특이하고 예쁜 꽃이 있길래 "저게 뭐지?" 라고 했더니 곁에 있던 그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더니 금방 무슨 꽃인지를 제게 말해 준 적이 있습니다. 신기해서 그 기능을 배워와서, 사무실에서 키우고 있던 꽃에 대고 찍었더니 "드라코" 라고 즉시 알려주었습니다. 신기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비단 휴대폰 뿐만이 아닙니다. 비싼 요리기구들을 사놓고 다양한 고기 요리도 하고 빵도 꿉고 하면서 잘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은 음식 데워먹는 데만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알고 사용할 수록 그 값어치가 높아짐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휴대폰의 다양한 기능 중에서 극소수의 기능만 사용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복음도 마찬가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의 풍부한 능력 중에서 몰라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겠구나 싶은 생각입니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복음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그 역할과 기능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고자 했던 복음의 방향성, 즉 그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었을까요?
1. 내 영혼의 영적인 실상을 자각케 하는 기능입니다.
오늘 본문 18절과 그 뒤에 나오는 3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18절),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32절)
복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자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형자에 해당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복음을 모르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복음의 기능과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듣고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라면이 몸에 나쁘다고 해도 그 맛에 유혹되어 끊지 못합니다. 술과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해도 그것을 쉽게 끊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냉정하게 자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암 진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건강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몸에 해로운 것을 멀리하고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실상을 명확하게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해 안다는 것도 이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경으로 살고 있는 것은 첫째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것을 알게 되는 기회, 즉 영적인 인카운터 (Encounter, 직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카운터는 성령께서 도와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성령을 직면하면 내 영적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면 성령을 직면하게 되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내 영적 건강 상태를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복음의 지식에 안주하지 말고, 전도폭발훈련 같은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귀를 열고 복음을 오롯이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자신을 깊이 맡기고 복음을 다시 들어보면 하나님의 터치가 찾아옵니다. 그 하나님의 터치가 있고, 그 터치를 통해 내 영혼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영적인 실상의 원인을 자각케 하는 기능입니다.
복음의 기능을 위해 쉽게 비유하는 방법으로 현미경과 빛이 있습니다. 그냥 눈으로 바라보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현미경을 갖다 놓고 봅니다. 그러면 아주 미세한 것들도 크게 확대되어 잘 보입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끗하고 맑아 보이던 거실로 햇살이 비춰지면 수많은 먼지가 거실 가득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우리 인생을 비추게 되면 우리 인생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딱지들이 환히 보이게 됩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구체적인 그 딱지들은 무엇일까요? 우리 영혼의 치부는 무엇이며, 그 치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본문 18절과 19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바로 불경건과 불의입니다.
불경건은 Godlessness입니다. 신을 믿지 않는 것, 신이 내 속에 없는 것, 혹은 내 마음에서 신을 내보낸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과 독립하여 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불의는 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삶의 현상들입니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자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28절과 29절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하나님을 멀리하고 내 멋대로 살고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스티브 윌킨스가 [은밀한 세계관]에서 잘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① 나를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개인주의, ② 나의 소유물이 곧 나다는 소비주의, ③ 나의 판단과 너의 판단은 다르다라는 도덕적 상대주의, ④ 포스터모던 부족, ⑤ 나도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찬양한 [믿음이 없이는]에도 나오듯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청지기에 불과한데도, 스스로 내 삶의 주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찾아오시기를 소망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터치마져 부담스러워하고 내 식대로 살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복음이 주는 내 영적 실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원인을 자각하고 불경건함과 불의를 내려놓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영적인 회복을 가능케 하는 기능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삶의 원인에는 불경건과 불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도 있습니다. 불경건과 불의의 삶을 사람의 마지막 정착지는 바로 우상숭배이기 때문닙니다. 21절부터 23절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고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균열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그 균열을 채우려고 헤맵니다. 육적으로는 먹는 것으로 채워려 하고, 영과 혼은 지식으로, 또는 권력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떨 때 채워질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다시 채울 때 더 이상 찾아 헤매지 않게 됩니다.
언젠가 커다란 배의 진수식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최첨단 설비를 갖춘 멋진 배였습니다. 그런데 그 진수식의 마지막으로 돼지머리를 갖다놓고 절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최첨단 설비에게 안전을 기대는 것이 아니라 돼지머리에게 그 배의 안전을 맡기는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첨단 설비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은 걱정을 하나님이 아니라 돼지머리에게 맡기는 우리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네이버 뉴스를 통해, 미모의 미스코리아 출신 레이싱 모델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누구에게나 채워지지 않음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채워지지 않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돼지머리에게 의탁해야 할까요? 아님 자살도 생을 마감해야 할까요?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기도를 영적 호흡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 회복을 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나를 채우고 예수로 만족하게 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복음은 내 영혼의 실상을 자각하게 하고, 그 실상의 원인을 자각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 영적 부족함을 회복하게 하고 다시 채우게 하는 놀라운 능력도 있습니다. 그 능력을 제대로 알고 복음으로 능력삼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생수의 강이 넘치게 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의 능력을 알고 삶에 늘 생수의 강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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