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0812_설교정리_당신의 약점을 잘 관리하라 (삿14:1~4)

서정원 (JELOME) 2024. 8. 12. 09:53

○ 말씀 전문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 받은 말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 가운데, 선입견과 오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선입견과 오해로 인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파리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 16세의 어린 나이로 올림픽에 참여한 사격선수 반효진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제 겨우 16세가 된 그녀가 출전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 어린 선수가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쟁쟁한 선수들 속에서 과연 1승이라도 할 수 있겠냐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당당히 금매달을 땄고 그것도 우리나라 100번째 금매달을 딴 사람으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신문에서는 "16세 사수 반효진, 백번째 금매달을 쐈다" 라고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그 기사를 본 저는 저의 선입견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오해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삼손입니다. 여자 때문에 패가망신한 그를 어떻게 성경은 사사라고 칭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전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평소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 성경구절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히브리서 11장 30절에서 32절입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믿음의 장에 삼손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다윗과 함께 당당히 올라가 있습니다. 삼손의 삶이 믿음의 삶이었음을 성경이 뒷받침 해 주고 있습니다. 삼손에 대해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그의 삶을 재조명 해 보았습니다. 결과 삼손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렛슨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렛슨은 ...

 

1. 거룩한 분노 :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며 살라

삼손은 죽음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이 원통했습니다. 그것이 수치요 부끄러움이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15장 18절입니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우리는 그를 단지 여인에게 빠져 죽음을 당한 자로 알고 있었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다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분노입니다.

[동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윤동주와 몽규와 정지용 시인이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정지용은 동주와 몽규의 스승이었고, 동주와 몽규는 일본으로 유학을 함께 간 친구사이였습니다. 나중에 몽규는 총을 들고 일본에 대항하는 사람이 되었고 동주는 시를 통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일본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의 사상 때문에 투옥되었을 때, 일본 순사가 정지용 시인에게 그를 참소하는 진술서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지용 시인을 그 자리에서 진술서를 찢어버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라며 자신 보다도 동주가 더 떳떳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지금은 어쩌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식이 짝을 만나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넉넉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하고, 사업에 실패한 것이 부끄럽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정작 부끄러워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빼먹는 것에도 부끄러움은 커녕 무덤덤하고, 사탄의 유혹에 무너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도 부끄러움은 커녕 핑계를 찾으려고만 합니다. 

이렇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되는 데는 거룩한 분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없기 떄문입니다. 세상 조류에 휩쓸려 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세상살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거룩한 분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거룩한 분노입니다. 이 거룩한 분노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떳떳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분노를 회복하여, 교회다운 교회, 예배다운 예배, 성도다운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신동탄지구촌 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합시다.

 

2. 자신의 약점을 잘 관리하라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단 하나의 약점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점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14장 7절입니다.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그의 약점은 이성을 너무 좋아하고 거기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부모조차도 그런 삼손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결국 이 약점이 아킬레스 건이 되어 실패하게 됩니다. 

그는 믿음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믿음이 좋은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약점을 관리하지 못해서 멸망했습니다. 목사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성도와의 성추문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평생의 목회를 물거품 되게 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목사들을 보면서, 약점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꺠닫게 됩니다. 

저는 1992년 아주 젊은 20대에 전도사로 목회자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궁금하면서도 무너지는 목사님을 보면서 '자기 괸리'를 철저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곤 수많은 자기관리 서적들을 구해 팀독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목사님이 쓴 목사가 관리해야 할 33가지 라는 기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을 읽으면서 자기관리를 합니다. 그 중 10가지만 소개토록 하겠습니다.

①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여야 한다. 교인들이 없다고 해서 목회자의 정체성을 망각한다면 결국 사람들 앞에서는 목회자 연기를 하는 셈인데, 연기를 통해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

② 교인들에게 대접만 받는 사람이 되지 말라.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 목회자가 나눔의 종착역이 되려 하면 스스로 썩어버린다.

③ 이성이 교역자 혼자 심방해 줄 것을 요구하면 절대로 응하지 말라. 이성과는 단둘이 식사도 하지 말라.

④ 명단을 작성할 때는 성도들의 이름을 먼저 쓰고 교역자의 이름은 제일 끝에 넣어라. 교인들을 위한 섬김은 종이 위에서도 나타나야한다.

⑤ 내일 떠나더라도 지금 섬기는 교회를 중간 기착지라 생각지 말고 종착역으로 여기라.

⑥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⑦ 실수를 꺠달았을 때는 즉시 사과하라. 실수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세 번 이상 반복하는 것은 목회자의 자질 문제다.

⑧ 절대적인 것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적인 것이라면 모두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부목사 시절에 세계문학전집 한 집은 반드시 읽어라. 목회의 대상은 사람이고 문학은 사람에 관한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문학은 사람에 대한 앎의 깊이를 더해준다. 사람을 알지 못하는 자의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⑩ 목회자들 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 목회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그 입에서 나오은 말들은 모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비단 목회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약점을 관리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약한 고리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약점을 철저히 괸리하는 새로운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고독한 전사를 넘어서 리더의 사회성을 배워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한 상대에게 쉽게 무릎을 꿇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주변 강대국인 블레셋과 모압과 같은 나라들에게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단연 삼손은 전사였습니다. 15장 15절과 16절입니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 당나귀 뼈가 얼마나 단단한지는 몰라도 그 당나귀 뼈를 휘둘러 천명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불굴의 전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고독한 전사였습니다. 주변에 무수히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서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만약 주변 사람들이 합심하여 도왔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결국 삼손은 이스라엘를 해방시키고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완전히 통일시킨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힘이 장사였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힘으로는 삼손을 능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리더의 사회성 때문이었습니다. 실력 있다고, 능력있다고, 똑똑하다고, 혼자만 잘 해서는 이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폭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만 알고 내세우는 사람은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능력이 있고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더라도 곁에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과 전문성을 키우되, 반드시 관계성과 사회성도 길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가족도 못챙기는 사람, 유학까지 보냈는데도 나중에 부모는 모른채 하는 그런 사람으로 키워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전사로 키우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교회가 좋은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사회성이 겸비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성이 갈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성장과 성숙은 부딪히면서 자랍니다. 이 교회를 통해 우리 모두의 가정과 직장이 변화되어 갈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김우진 선수의 인터뷰 일부를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의 기회를 얻어냈던 그는 축하의 인터뷰에서 "저는 양궁선수다. 금매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돌아가서 LA올림픽을 준비하면 된다.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제가 양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다시 계속해서 나아간다는게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메달을 땄다고 해서 젖어있지 말라. 햇빛 뜨면 마른다"

새 교회에 입당한지 2주가 지났습니다. 새 교회에 입당했다는 것에 젖어있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젖어 있다가는 해가 뜨면 말라버립니다. 우리의 삶이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현재에 머무러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마음을 다지고 준비하는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