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 받은 말씀
[역린]이란 영화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렸던 정조가 늘 가르치려고만 드는 신하들을 향해 그대들이 그렇게 예의와 중용을 강조하는데 어디 한번 그 중요하다고 하는 예의 중용의 23장을 외워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고관대작들 그 누구도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곁에 있던 내시 중의 상선이 23장을 외워보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큰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 섬기는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은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한 지혜, 버려야 할 습관,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럼 우리가 가져야 할 지혜는...
1. 땅에서 난 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를 사모하라
지혜에는 땅에서 난 지혜가 있고 하늘로부터 난 지혜가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야고보서 3장에서 땅에서 난 지혜는 어떤 지혜이고 하늘보부터 난 지혜는 무엇인지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을 한번 더 음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땅에서 난 지혜입니다. 3장 14절부터 16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소위 우리가 말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 보면 되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욕망을 이루는데 필요한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저도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한 그들의 술수에 넘어갈 뻔 했습니다. 다행히 막판에 정신을 차렸지만, 어떻게 그 좋은 머리를 그런 보이스피싱에 이용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에서 난 지혜는 우리를 이런 곳으로 끌고 갑니다.
하늘로부터 난 지혜는 17절과 18절에 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긍휼함이 있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
지난 주 지구촌교회 본교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요한계시록"이라는 뮤지컬을 봤습니다. 요한교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 작가의 능력과 신앙 수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99%의 노력과 맞먹는 1%의 영감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1%의 창의력과 영감이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시대입니다. 그 뮤지컬을 보면서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K-컬처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K-POP과 같은 K-Culture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다면 수많은 해외 선교사들의 힘 못지 않은 복음 전파의 영향력을 발휘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는 어떤 지혜로 살아가는가? 세상적인 지혜를 구하며 내 욕심과 이기심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내 삶에는 과연 얼마나 되는 성결과 거룩의 지혜를 담고 있나? 한번 쯤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의 중용 23절 내용도 외우지 못하는 상태에서 입으로만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늘로부터 난 지혜를 얼마나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지혜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고, 온 힘으로 하늘로부터 난 지혜를 구하며 사는 새로운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쉽게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려는 습관을 버려라
케이치프 노이즈는 인간은 6가지 감옥에 갇혀 살기 쉽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① 자기 도취의 감옥, 자기에게 도취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② 절망의 감옥, 절망에 빠지면 어지간 해서는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③ 과거 지향의 감옥,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에 빠지는 감옥입니다.
④ 선망의 감옥, 남의 떡이 커 보이기만 합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⑤ 질투의 감옥, 남 잘 되는 것에 배 아파 합니다.
⑥ 비판의 감옥, 자기 단점은 생각지 못하고 남의 단점만 찾아 지적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중의 여섯번째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11절과 12절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사람마다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속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는 그렇게 하는 동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기를 알기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동기를 모르고 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넌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질책합니다.
언젠가 필그림 하우스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강사로 나서시는 목사님에 대해 호감을 갖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참석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본교 이동원 목사님께서 주관하시는 세미나라서 참석을 했습니다. 세미나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목사님의 속사정을 모른채 판단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를 통해 난 '내가 보고 듣는 게 다가 아닐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되로 받으면 말로 되갚아 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는 줄 알면서도, 비난하거나 비판하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하면서 한국교회의 현실과 일부 목회자들의 자세를 비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설교하는 자신을 포함해서 회개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지만, 일부 목회자의 마음 속에는 '나는 아니라' 라는 의식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한국교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깎아내리면서도 '나는 빼고' 라는 잠재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목회자들 조차도 이런데 성도들은 예외이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습관화 되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평강과 화목이 찾아들지 못합니다.
새로운 한주를 바라보며, 지난 한 주, 내 삶은 어떠했나? 어떤 감옥에 갇혀 살았나 되돌아 보고, 새로운 한 주는 감옥 밖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서로 세워주고, 신앙을 지켜주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오늘 지금 이 시간의 감사를 잊지 말라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삶은 축복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감사함으로 사는 것이 잘 안됩니다.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때는 우리가 인생의 유한성을 깨달았을 때라고 봅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무리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살더라도 우리에게 내일 일은 모르는 일입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참으로 안개 같은 인생입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허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한한 인생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15절부터 17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요약하면 ① 허탄한 자랑은 하지 말라 ②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하라 입니다.
선한 일에 대해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듭니다. ① 복음을 전하는 것, ② 착한 일, 선한 일을 하는 것, ③ 말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자유롭게 교회에 나와 드렸던 예배를 코로나 때문에 교회 정문에도 들어 설 수 없었습니다. 마스크 한 장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만 했습니다. 언제 쯤이 되어야 그 흔하고 자유롭던 예배를 마음껏 드릴 수 있을까 하며 사모했습니다. 지금은 언제 그런 때가 있었냐 싶을 정도로 일상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 때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을까요?
지금 이 시간에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하며, 말로서 격려하고 일어켜 세워주는 승리의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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