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0526_설교정리_이 시대의 마노아같은 사람이 되라 (삿13:3~5)

서정원 (JELOME) 2024. 5. 27. 06:06

○ 말씀 전문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 받은 말씀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몽골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13세기에는 전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에도 이제야 군데 군데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영광은 징기스칸의 동상과 같은 흔적들로만 남아있기만 하고, 뭇 나라들에 비해 발전이 뒤쳐져 있는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몽골이 낙후되어 있는 이유는 지난 과거에 대한 교만과 자부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의 오래 된 자부심이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단 몽골만이 아니라 누구든 한 때의 영광에만 빠져 있으면 도태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잘 깨닫고 받아들이며 신앙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우리 교회도 건강하고 발전적인 믿음의 공동체로 발전해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삼손의 아버지인 마노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사사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사시기 시대는 각자가 자기 소견을 옳다 여기고 그 소견대로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도 마노아는 세상의 시류에 휩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 듣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시대,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삶의 진리를 회복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삶, 어떤 아버지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럼 마노아는...

 

1. 악한 시대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입니다.

사사기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인 레위인들도 첩을 두고 살았던 시대였습니다. 축첩이 당연시 되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 증거를 성경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12장 7절부터 9절을 보면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사사인 입산이 60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실 부인에게서 60명의 자녀를 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사이면서도 첩을 두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사사였던 압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아들만 해도 40명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도 마노아는 달랐습니다. 그는 아내가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첩을 두지 않았습니다. 13장 1절과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사사 시대의 한복판에 살았던 그도 첩을 둘 수도 있었지만 남들이 간다고 해서 그런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악한 시대에 살았지만 영향을 받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세상을 지키고 유지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악한 세상에서도 우리는 묵묵히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대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1편 3절과 4절은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임을 잘 가르쳐줍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평범하고 우직한 삶을 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성공보다 구별된 삶을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삼손의 아버지인 마노아 부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삼손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기 이전에 먼저 그의 부모인 마노아에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잘 되려면 부모부터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결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 이전에 거룩함에 두어야 한다. 부부가 서로에 대해 거룩함이 지켜져야 비로소 행복이 이루어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룩을 다하기 전에 행복부터 구한다는 것입니다. 거룩이 잘 지켜질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이 닙니다. 우리는 인생을 미적분과 같은 너무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시 구구단을 외워야 할 시대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삶의 문제 대부분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것을 지키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내세우는 슬로건은 대단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것, 각론에 소홀합니다.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대단한 것을 하는 것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 정직한 모습입니다. 신실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공 보다는 성결한 삶입니다. 마노아 부부는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성공보다는 성결한 삶, 구별된 삶을 사모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아들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삶에 무엇이 먼저인지를 잘 깨닫고 성결과 거룩함을 앞세우는 복된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본을 보이고자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오늘은 온세대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처럼 온 가족이 청바지와 흰 티를 입고 참석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 온세대 예배를 기획한 것은, 어린 자녀들에게 믿음의 추억을 유산으로 남기자는 목적에 있습니다. 자녀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얼마나 감명 깊게 기억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창바지를 입고 흰 티를 같이 입고 참여했던 온세대 예배의 분위기는 추억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와 소통하고 싶었다는 그 마음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야 할 믿음의 유산은...

첫째, 하나님만을 섬기는 본입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자식을 갖게 해주겠다고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에게 마노아가 염소를 잡아 대접하려고 하자, 하나님의 사자는 자신에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적 가치와 물질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야 할 믿음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예배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온세대 예배를 통해 한자리에서 드리는 이 예배의 시간에 우리가 집중하고 몰두할 때 우리의 자녀, 우리의 손주들의 믿음이 올바르게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둘째, 주님께 물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8절입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자식을 낳게 해주겠다고 했을 때, 마노아가 가장 먼저 구한 것은 그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면 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 했지만 사사시대는 모두가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자녀 교육도 자기 주장대로 하면 되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마노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키울지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묻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내 곁에 붙어 계실 것을 바라는 것이 동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부단히 묻고 그 인도함을 따라 사는 것이 동행입니다. 그 삶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입니다. 그 시대에 내 몸을 맡기고 살아가다 보면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현주소를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마노아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복된 한주를 시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