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0303_설교정리_목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삼하5:8~10)

서정원 (JELOME) 2024. 3. 4. 13:23

○ 말씀전문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받은 말씀

유머입니다. 어느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이 성경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둘러보시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철수라는 아이에게 물으셨습니다. "철수야!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 뜨렸니?" 철수가 정색을 하면서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제가 안 했는데요" 그러자 옆에서 놀고 있던 영희가 거들어 대답하기를 "목사님, 철수는 오늘 쭉 저랑 같이 있있는 데요" 그러자 목사님은 어이가 없어서 주일 학교 선생님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지금 제가 철수에게 묻기를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나고 했더니 철수가 안했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된겁니까?" 그러자 그 주일 학교 선생님이 대답하기를 "철수는 워낙 착한 어린이라서 걔가 안했을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주일 학교 교장 선생님인 장로님을 불렀습니다. "장로님!  얘가 여리고성을 안 무너뜨렸다는데 어떻게 된겁니까?" 그 장로님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 하시더니만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면 그 성을 재건축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정복한 성이 여리고성입니다. 반면에 가장 마지막으로 정복한 성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온성, 일명 예루살렘성이라는 성입니다. 예루살렘의 심장부에 있는 이 시온성은 다윗에 이르러서야 겨우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여부스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시에 이 시손성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그 시온성을 다윗은 왕이 되자 가장 먼저 정복하려고 했을까요? 거기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렛슨이 있습니다. 그 렛슨은...

 

1. 영적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하라

다윗은 왕이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①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는 것과 ② 시온성을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온성을 점령하려고 한 것은 통치를 방해하는 이방 족속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온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줄기차게 정복하려고 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공격하고도 정복하지 못했고, 베냐민 지파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사울도 결국 그곳을 정복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공존해 온 곳이었습니다.

그러자 여부스 족속들은 그런 이스라엘을 은근히 무시하고 경시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자기들은 맹인이나 다리를 저는 사람들만으로도 이스라엘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심장부에 '황금돔'이라는 큰 건물이 떡 버티고 있습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이슬람교 성전입니다. 이스라엘의 심장부에서 이슬람이 영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온성의 여부스가 바로 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영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 시온성을 정벌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영적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다음 세대들을 위한 영적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영적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의 영적 주도권을 위해서 기도하고 훈련하는 데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영적 주도권 도전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2. 목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살면서 자기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땅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왜 그들에게 그 땅을 정복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목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쉽고 편안한 것만 하게 되고, 어렵고 힘든 것은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12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그래서 다윗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목적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여 싸웠습니다. 반드시 정복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오래 전부터 그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51절과 54절입니다.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51절),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54절) 20년 전 골리앗을 이기고 수급한 골리앗의 목을 가져간 곳은 바로 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수급한 적장의 목은 보통 도시 한 복판에 걸든지, 아니면 승리자의 고향으로 가져가서 그 전공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목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성은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다윗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시온성을 정복한 데는 이 같은 거룩한 목적과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 목적과 동기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인생의 목적과 동기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 목적과 동기가 바르지 못하거나 삶의 행위가 그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다면 언제든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는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3. 주님과의 동행에서 승리하라

영적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하고, 목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다윗이 이 주도권 싸움과 목적지향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힘과 능력만이 아니라, 또다른 결정적인 승리의 원인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10절에서 보여줍니다.

10절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의 영성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싸움에서의 승리의 근원은 하나님의 동행으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었습니다. 다윗의 영성이 시편 16편 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I'll stick with GOD. 그 강한 여부스를 점령하고 다윗이 승리한 그 승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의 승리이고, 함께 하심의 승리였습니다. 

나는 코로나 시기를 맞아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나 썼는지 기록을 되돌아 보니 1,200번이 넘었습니다. 그 영성일기를 통해 나의 영적 건강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 영성 일기를 쓰게 된 배경에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무서운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무서운 영적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코로나를 접한 목회자들의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놀라고 두려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하나님이 알고 계실 텐데도, 나를 포함한 목회자들 조차도 하나님과의 동행이 부재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입술과 실제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실제에서도 하나님의 동행을 확고하게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입술이 실제가 되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단순한 종교생활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 동행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점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