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 받은 말씀
마이클 레빈이 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범죄 예방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영서적으로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했다간 나중엔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80년대, 뉴욕에서는 연간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뉴욕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실제로 경찰이 매일 지하철 순찰을 돌아야 할 정도로 뉴욕의 치안은 말 그대로 막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자 럿거스 대학교의 범죄심리학 박사였던 조지 켈링 교수는 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원용해서 뉴욕시의 지하철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당시 뉴욕 지하철에 도배되어 있던 낙서를 지우게 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낙서가 방치되어 있는 상태는 창문이 깨져 있는 건물과 같은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84년, 지하철 차량 기지에 교통국의 직원이 투입되어 무려 6000여대에 달하는 차량의 낙서를 지우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낙서가 얼마나 많았던지, 지하철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개시한 지 5년이나 지난 뒤에야 모든 낙서 지우기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계속해서 증가하던 지하철에서의 흉악 범죄 발생률이 낙서 지우기를 시행하고 나서부터 완만하게 되었고, 2년 후부터는 중범죄 건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94년에는 절반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뉴욕의 지하철 중범죄 사건은 75%나 줄어들었습니다.
그 후, 1994년 뉴욕 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은 지하철에서 성과를 올린 범죄 억제 대책을 뉴욕 경찰에 도입했습니다.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무시나 빈 캔을 아무데나 버리기 등 경범죄의 단속을 철저하게 계속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하나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깨어진다. 작고 사소한 것이 미래를 결정한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밖에 모르던 다윗이 사울의 끈질긴 추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곳 아기스 왕에게 부탁하여 시글락이라는 작은 성읍을 하사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이 다윗의 일생 일대의 패착이 되고, 그의 인생이 구부러지고 굴국진 인생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그럼 그 신실하던 다윗이 왜 이러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1. 믿음이 아닌 두려움으로 미래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오랜 쫒김의 생활 속에서 다윗의 마음은 점차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고난이 길어지고 깊어지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단단하던 믿음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던 자리는 두려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렌즈가 아니라, 두려움의 렌즈로 바라보게 되면 미래를 부정적으로 단정해 버리게 됩니다. 문제를 확대해석하게 되고, 과장되어 보이게 됩니다. 미봉책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걱정과 두려움에 밀려서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그러한 미래에 대한 계획이 어찌 온전한 계획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성급해집니다. 조금하고 성급한 마음으로 그린 미래가 어찌 제대로 된 계획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봐야 안정적이고 확신에 찬 앞날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자꾸만 걱정과 두려움 속에 구속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두려움과 염려로 미래를 계획하지 말고, 믿음으로 미래를 그려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 난관이 찾아오더라도 그 난관만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확신과 안도함과 평강이 깃듭니다.
2. 주님의 영광이 아닌 생존만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인생은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거대한 골리앗에게 물맷돌만 들고도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나님을 욕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다윗은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추적 끝에 그에게 암담함과 두려움이 밀려오자 그 영광을 버리고 자신의 생존만을 택해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 나라의 왕에게 은혜를 구했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아기스가 마음이 좋아서 그에게 시글락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를 이용하여 이스라엘과 대적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믿음을 버리고 생존을 택했을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생존도 중요하지만 생존만을 위한 선택은 더 위험하고 더 큰 Damage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생존만을 생각하고 택한 그의 택함에 의해 불어온 위기의 단면을 30장 1절부터 3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하지만 그의 위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 큰 위기가 그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30장 6절a입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그를 따르던 백성들이 그에게 돌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예루살렘까지 가서 우물물을 길어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가 섬기는 다윗에게 돌을 들었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명분없는 선택 때문에 발생한 불행한 사태였기 떄문입니다. 생존만을 위한 선택은 명분을 잃어버리게 하고, 결국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생존만을 위한 선택은 미봉책은 되지만, 결국은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생존만을 위한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① 미봉책이 되기 쉽습니다.
② 다음 세대에게도 치명상을 줄 수 있습니다.
③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선택을 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 삶의 생존만을 생각하며 선택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겁내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그의 거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 만이 뚜렸하게 보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변하게 됩니다.
27장 10절과 11절입니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아기스가 누굴 쳤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유다 네겝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자기 동족인 유다를 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을 쳤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된 데는, 아기스가 어떻게 여길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눈 앞에는 아기스만이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놓치는 순간, 사람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짓말도 스스럼 없이 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의 연장선상에 일어난 사건이 밧세바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 눈치게 보기 시작하고, 사람을 의식하게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놓치게 되고, 모든 것을 놓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바라보는 그 초점을 다시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돌로 자신을 치려고 하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점을 아까 보았던 30장 6절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6b의 내용을 영어성경에서는 'David found strength in the LOAD his God'
이번 한 주,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예기치 못한 근심과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으로 인한 힘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힘차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난주 설날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았던 얘기를 나누면서 오늘의 말씀을 끝맺고자 합니다. 지난주 주일예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예배와 귀성여행으로 지쳤던지 저녁에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안방을 내어주신 부모님은 거실에서 주무셨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탓인지 평소 일찍 일어나던 습관 때문이었던지 새벽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부모님 잠을 깨울 것 같아서 그냥 잠시 누운 채로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밖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보니 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번 얘기 드렸다시피 아버지는 제가 목회자가 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셨던 분이며, 목회자가 되고 나서도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하고 계시는 소리였습니다. 굳이 아버지에게 개척을 했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고 5~6년을 지내왔었는데, 아내로부터 언젠가부터 아버님이 교회에 나가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벽 일찍 일어나시어 나를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실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곤 봉투 하나를 건네주시며, 지난해 일년 농사지은 소출의 반이라 하시면서, 적지만 교회 짓는데 보태라고 하셨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부모님을 떠나 동탄으로 올라오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하셨을 때, 아버지의 걱정에 굴복하여 목회자가 되는 것을 접었다면 지금의 이 하나님 은혜를 맛볼 수 있었을까? 두렵고 걱정스런 마음에 밀려서 미래에 대한 꿈과 사명을 접지 않고, 믿음으로 그린 그때의 선택이 참 잘 했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선한 길, 가장 좋은 길, 가장 완전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힘든 환경에 밀려 두려운 마음에 굴복해서 미래를 그려서는 안됩니다. 지금 견디기 어렵다고 생존만을 찾는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에게 목을 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계획, 그런 선택,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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