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30903_설교정리_그냥 주님으로 푹 물들이면 좋겠습니다 (엡5:1~4)

서정원 (JELOME) 2023. 9. 4. 08:02

○ 말씀전문
[에베소서 5장 1절~4절]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 받은 말씀
드레스코드란 시간, 장소, 상황 (TPO : Time, Place, Occasion)에 어울리도록 옷의 스타일, 격식, 모양, 색상 따위를 정해놓은 옷차림을 의미합니다. 학창시절에는 학교마다 정해놓은 교복이라는 드레스코드가 있었습니다. 상가에 조문을 갈 때는 거기에 맞는 드레스코드를 입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안내문에 반드시 그날의 드레스코드도 지정되어 안내됩니다. TPO에 어울리게 옷을 입는 것은 그 TPO에 맞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주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드레스코드가 그 TPO에 맞는 마음가짐을 얘기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도 교회에 다닌다는 외면적인 의미 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의 내면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번 한주 동안 어떤 영적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랑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1절과 2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개척을 하기 전에 섬기던 지구촌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던 진재혁 목사님을 모시고 가족모임 장으로 갈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목사님은 제게 '20년간 사역하면서 가장 아쉽거나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고 물었습니다. 교회를 떠나 홀가분한 분위기라서 그냥 부담없이 평소 느꼈던 마음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사역하느라 아내에게 해외여행을 할 기회를 한번도 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담임목사 비서실에서 해외여행 휴가 일정을 잡아서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냥 농담처럼 한 얘기였는데 담임 목사님은 사소한 것까지 배려해 주시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인사를 드리려 갔더니 하얀 봉투 하나를 준비해 두셨다가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사역을 하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깊은 마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진재혁 목사님은 그 이후에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내려놓으시고 캐냐로 선교활동을 하시려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전도사 중에 아이가 아픈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선교사님을 조용히 부르셔서 자기가 애지중지하던 애완견을 주고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픈 아이에게 애완견이 도움이 될 듯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애완견은 생각보다 큰 개였습니다. 아이가 큰 개를 보고 무서워해서, 그 선교사는 목사님을 찾아뵙고 정중하게 사정 얘기를 하곤 개를 돌려드렸습니다. 캐냐로 떠나시기 전날,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그 전도사님을 다시 부르시곤, 그를 애견샵으로 데리고 가서 작고 예쁜 애완견을 한마리 사주셨습니다.
지구촌교회에는 부목사만 50명이 넘고 사역자 전부를 헤아리면 250명이 넘습니다. 담임목사님은 좋은 교회 차를 마다하시고 늘 사역자들의 차를 함께 동승하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같이 섬기는 사람들과 가까워지시려고 늘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편을 늘 살피시고 배려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랑으로 옷 입으신 그분이 생각납니다.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이 한주를 시작해야 할까요? 직장, 일터, 가정과 목장에서 가장 먼저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
 
2. 거룩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음행과 탐욕은 그 이름조차 부르지말라. 이 말씀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에베소가 어떤 도시였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는 첫째, 지중해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탐심과 탐욕이 팽배해 있던 곳이었습니다. 둘째는 크다란 아데미 여신상이 자리하고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아데미 여신상은 풍요와 다산을 뜻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사제들과 음란한 생활을 꺼리낌 없이 했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에베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유사합니다. 탐심과 탐욕이 삶의 뼈대가 되어있다시피 되어 있습니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시급히 입어야 하는 옷이 바로 이 거룩의 옷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쓰여져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너무나 기분이 좋으셔서 그에게 천국문을 여는 열쇠를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이 고백 하나로 그 큰 선물을 주셨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한 곳은 빌립보 가이샤라였습니다. 가이샤라는 황제의 이름입니다. 도시 이름 앞에 이 가이샤라라는 명칭이 붙으려면 첫째 황제의 이름에 걸맞는 웅장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황제의 동상이 있고 모두가 그 황제를 숭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황제가 주인이고 돈과 권력과 명예가 주인이던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더없이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돈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이 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에게도 베드로의 고백이 있고, 거룩함으로 구별되이 살아가는 삶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이 한주 우리에게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감사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3절과 4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감사의 옷을 입고 산 사람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죽음을 무릎쓰고 기도했습니다. 그냥 한번 한 것이 아니라 '전에 하던 대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일의 삶이 기도의 삶이었고 감사의 삶이었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다는 것은 바로 그는 감사의 옷을 입고 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의 삶이 풍족하고 매사가 술술 잘 풀려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었습니다. 비합리적이고 비인격적인 대우 속에서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그런 삶 속에서도 그는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감사로 옷 입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가 그런 처지 속에서도 어떻게 그런 감사의 옷을 입고 살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는 그가 만난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선한 것으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감사하게 하고, 감사의 옷을 입을 수 있게 합니다. 감사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 결단과 선포로 감사의 옷을 입고 출발하는 이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시 한편을 살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영자님의 [염색]이라는 시인데, 어려움 속에서 내일을 희망한다며 한 선교사님이 보내주신 시입니다.
 
[염색]
그냥
주님으로 물들이면 좋겠습니다
물감이 천에 물을 들이듯
주님으로 제가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 따로 있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 따로 있으며
깨달음과 실천이 따로가 아니라
주님의 삶이
내몬에 배어버려서
그냥 사는 것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줄줄 외우지 못해도
조리있게 진리를 변증하지 못해도
그냥 사는 것이
말씀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님으로
푹 물이 들어보리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