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 받은 말씀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지인의 혼사가 있어서, 1부 예배에 참석하고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주로 퇴임한 사람들이 하객으로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많이 늙어 보이는 사람, 또 나이 답지 않게 건강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겉 모습 외에도 얼굴에는 온화한 모습으로 나이가 든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얘기를 나누어보니 아직도 삶에 대한 기쁨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기력하게 그냥 시간을 보내는 듯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문득 삶에 대한 내 모습은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 말씀에서 늙음에 대한 말씀을 주셨구나 싶었습니다.우리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전 하십니다'. '전혀 변하지 않으셨네요', '건강해 보이시네요' 라고 덕담을 합니다. 간혹 직설적으로 '와~ 왜 이리 늙으셨어요?'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건강해 보인다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냉정하게 그 사람이 보이는 나이를 재단해 봅니다. 그리고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늙어가면서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할까요? 그것 보다는 아마도 건강하게 사는 것을 더 중히 여길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적이고 영적으로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가 일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은 14절에서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라고 했습니다. 늙어 가면서도 여전히 생산적이고 활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노인에 대한 두 부류가 나옵니다. 하나는 악인의 삶을 사는 노인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의 삶을 사는 노인입니다.
악인의 삶이 어떤 것인가는 6절과 7절에서 보여줍니다.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어리석은 자이며, 무지한 자이며, 악을 행하는 자이고 주의 원수로서 사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뜻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내 삶에서 몰아낸 자입니다. 이런 악한 삶을 산 자의 결과는 '멸망'과 '패망'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마치 사라지는 풀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반면에 의인의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닮고 싶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는 '번성'하고 '성장'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진액이 풍부하고 빛이 청청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려나무와 백향목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종려나무는 키가 20미터 이상 자랍니다. 그리고 야자대추를 맺습니다. 이런 종려나무에서는 한 그루에서 야자대추를 50키로그램에서 60키로그램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명이 무려 80년 정도가 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열매를 우리에게 주는지 모릅니다. 구약에서 가나안 땅을 말씀하실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꿀'은 우리가 생각하는 꿀이 아니라 바로 종려나무에서 열리는 야자대추를 말합니다. 그만큼 야자대추는 달고 온갖 영양분이 풍부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종려나무 같은 사람을 의인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백향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숲의 왕이 사자라면 백향목은 수목의 왕이라고 합니다.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키가 40미터 이상 자라고 둘레도 3미터 가량 됩니다. 그리고 수명은 600년이나 산다고 합니다. 짙은 향기가 나고 방부력이 강해서 아주 좋은 건축재가 됩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지을 때도 그래서 이 백향목을 가지고 와서 지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백향목이 이렇게 자라려면 거기에 걸맞는 토양이어야 합니다. 사막에 심긴다면 이런 나무가 되지 못합니다. 좋은 토양 위에서 훌륭한 건축재로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의 늙은이가 되려면 좋은 토양 위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좋은 뿌리를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 뿌리를 하나님을 향해 내리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라는 토양에서 하나님을 향해 뿌리를 내릴 때,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의 15절 말씀이 그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하나님이 나의 바위가 되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 위에 서 있으면 어떠한 환란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다음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지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 내 영혼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살아가는가?
13절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처럼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의 뜰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내 삶의 중심에 누가 계신가? 나는 구원받은 자인가?
본문에서 심겼다는 것을 영어 성경에서는 Transplanted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는 순간 안으로 옮겨심기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주안에', '예수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뿌리를 예수 안에 내리고 있을 때 우리에게는 생수의 강이 흘러내립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 할 때 우리는 그 뿌리를 계속 박고 있을 수 있습니다.
2. 나는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과 가까이 있는가?
종려나무와 백향목이 폭풍이 와도 넘어지지 않고 거대한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서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서로 엮여서 서로 붙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려나무는 수컷과 암컷이 있어서 혼자서는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서로의 도움을 통해서만 성장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정을 주셨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과 25절입니다. "서로 돌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 만나서 붙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 예배와 목장 모임을 등한시 해서는 안됩니다.
3. 나의 가족과 이웃에게 축복의 사람인가?
백향목은 좋은 목재를 제공하고, 종려나무는 영양가 풍부한 야자대추를 주어 인간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우리도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나의 가족과 이웃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 번성하고 끝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결코 번성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남의 성공을 도와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열매 속에 있는 씨앗처럼 대대손손 이어지는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1960년 중반에 사해 근처에 있는 ‘마사다’라는 유적지에서 종려나무 씨앗이 담긴 항아리가 발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것은 그 열매는 로마군이 침략했던 AD73의 것이었습니다. 이 씨앗은 2005년 크투라라는 집단농장에서 심겼고, 놀랍게도 2000여년 만에 싹을 틔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수컷 종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다른 씨앗을 뿌려 싹을 틔웠는데 이번에는 암수였습니다. 그들의 수정에 의해 곧 2000년 전의 종려나무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합니다. 종려나무는 이처럼 수천년을 건너 띄어서도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맺는 축복도 이런 축복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늘 '나는 무엇으로 축복을 남길 것인가'를 물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인생의 모습이 만들어져 가고 늙으면 최종적으로 그 모습이 결정이 됩니다. 그 모습이 축복으로 쓰임받는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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