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설교요약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오늘 본문으로 설교말씀을 준비하면서 언젠가 읽었던 복효근의 안개꽃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리고 우리의 사역에도 장미꽃 같은 사역도 있지만, 안개꽃처럼 누군가를 보필하고 떠받쳐주는 인생과 사역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미꽃처럼 두드러진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아름다운 장미꽃 다발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안개꽃도 장미꽃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임을 함께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통해, 바울은 위대한 장미 같은 사역을 이루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함을 드러내는 데는, 오직 그만의 힘이 아니라 안개꽃처럼 묵묵히 뒷받침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고, 우리도 장미꽃 같은 인생도 중요하지만 안개꽃 같은 인생도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는 소중한 역할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홀로 빛나는 사역이 아니라, 다른 꽃과 함께 하여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다가, 그것은 다름 아닌 '함께' 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함께' 라는 정신이 안개꽃 인생을 피울 수 있는 아름다운 정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함께 하는 기쁨을 알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사모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우리 인생이 안개꽃 같이, 아름다운 조력자의 삶을 살 수 있으려면...
1. '함께 섬김'의 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섬김의 삶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으로 오늘 본문은 두기고를 보여줍니다. 두기고는 성경에 다섯번 나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4절에도 나옵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에베소서 6장 21절에서는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그리고 디도서 3장 12절에서는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가 설교를 했다거나 특별한 사역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주로 서신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체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 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함께 종이 된 자'라고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드러나는 사역은 없지만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칭함을 받습니다. 안개꽃 같은 인생, 안개꽃 같이 사역하면서도 아름다운 사역을 이룬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남들에게 보여지는 일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드러나지 않는 일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일로 여겨서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묵묵히 섬기는 자입니다. 안개꽃 같은 모습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사역을 묵묵히 감당하는 목회자들을 볼 때 더 감사하고 더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위에 있겠지만, 사람의 눈에도 참으로 좋아보입니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책에서 김윤기 집사님의 아들 김진혁 목사님이 하신 간증의 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면 여느 교회나 있었던 관리집사님은 약간은 이방인처럼, 때로는 열등한 신자처럼, 심하게는 성도들이 부리는 일꾼으로 취급받기 다반사였습니다. 그런 삶을 곁에서 오롯이 지켜 보았을 세 아들들이 모두 목사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떠나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울 지경인데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믿음의 승리자였고, 아들들은 그 증거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기도대로 순교자까지 나왔으니 아버지는 성도의 일꾼이 아닌 주님의 일꾼이 분명합니다. 아버지가 늘 내게 가르치셨던 말씀, '아들아 가장 낮아져서,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 말씀이 늘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김윤기 집사님은 해병대 수색대를 나오셨고, 교회 한 편에 살면서 교회 일을 돌보는 사찰집사였습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애환을 보고 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함께 하는 정신은, 자기를 한없이 낮추는 삶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것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최대한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함께 하는 정신입니다.
2. '함께 고난의 자리에 동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섬김의 삶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으로 오늘 본문은 아리스다고도 보여줍니다. 아리스다고는 성경에서 네 군데 더 나옵니다. 사도행전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20:4),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27:2),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19:29)에 세번 등장하고 벨레몬서에도 나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1장 24절) 이 아리스다고에 대해 본문에서는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10절) 이라고 합니다.
아리스다고 역시 성경에서는 특별히 설교를 하였다거나 특별한 사역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붙잡혀 배로 압송되어 갈 때, 그 강풍 속에서도 바울과 같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돌팔매를 맞을 때도, 또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아르스다고가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아무리 험한 고난의 자리일지라도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울 때 함께 해주었던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 함께 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의 아픔을 내몰라라 하지 않고, 목장 가족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안개꽃 같은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한번 나누었던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이 생각납니다. 안수현씨는 33세의 나이로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안수현씨는 죽기 전 그를 위해 헌혈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헌혈을 하지 말라고 할 정도 였습니다. 밤새 환자의 얘기를 들어주느라 밤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죽을 때 깜짝 놀란 것은 4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를 조문하였다는 것입니다. 청소부 아주머니, 식당 아주머니, 구두 닦이 아저씨, 동료 의사, 간호사, 동역자들, 교회 선후배들, 대학부 제자들, 병원 직원들, 군인들 등등...
동료들은 그를 스티그마 안수현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스티그마는 흔적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를 바보의사라고 하지 못합니다. 이 시대에 더 그리운 사람이며, 짦은 인생일지라도 정말 의미있게 살다 간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이라 불리운 것은, 그는 언제나, 누구나, 함께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스 6장 17절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우리도 '어떤 자리에서든지 함께' 하여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삶이 되고,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섬김의 삶을 보여준 또 하나의 주인공은 유스도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조연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주인공인 안개꽃 같은 사람입니다. 유스도는 '올바르다', '의롭다' 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의 이름이 예수였지만, 그에게 예수님과 구별하여 유스도란 이름을 붙여준 것을 보면 '바른 생활을 한 사람' 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유스도를 본문 11절은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새겨보아야 할 귀절은 '할례파이나'와 '함께 역사하는 자'라는 귀절입니다. 할례파라는 것은 골수 유대인이라는 의미이고, 정치적 색깔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바른 생활을 하는 자라는 뜻을 합하여 보면, 정치적으로 자기 주장이 아주 강하여 그 길만 밀고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정말 함께 하기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라고 합니다. 이런 함께 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이들만은, 그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일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고집을 꺾고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 빛깔을 접고, 안개꽃 같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유스도를 언급하기 바로 전 10절에 바울은 '마가'에 대해 언급합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전도여행을 할 때, 마가가 전도단을 무단 이탈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한번 용서해 주자고 했지만, 바울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고 해서 바나바와 크게 다투고, 서로가 찢어져서 전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 보면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바나바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한 대목입니다. 바울은 그때의 자기 모습과, 유스도의 삶을 보면서 아마도 찔림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을 겸하여 기록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함께 하려면, 함께 맞추려면 내가 손해를 봐야 합니다.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낮아질 수 있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고, 나를 죽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느그 아부지는 뭐 하시노]를 쓴 김진혁 목사님의 아버지는 김윤기 집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김진혁 목사는 둘째 아들이고, 셋째 아들의 이름은 김진규 목사입니다. 우리가 언듯 기억하고 있지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쯤 전, 김진규 목사는 2014년 4월 16일, 성지순례단을 인솔하고 갔다가 폭탄사고를 당했습니다. 범인이 폭탄을 터뜨리려고 버스에 오르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진규 목사가 그를 막아섰습니다. 던진 폭탄을 끌어안듯 한 덕분에 사고가 최소화 되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는 어느날, 가족들과 순서를 맡으신 선배 목사님들, 그리고 생전 함께 했던 친한 선후배들까지 조금씩 손에 흙을 쥐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아버지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막둥아! 막둥아! 내 막둥아!" 하면서 자꾸만 울음을 삼키고 계셨습니다. 그리곤 이내 나지막하게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모두가 잘못 들었나 싶어다시 아버지를주목했는데, 그랬더니 다시 한 번 조그맣게 "목사님..." 하시며 흐느꼈습니다. 처음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막둥아~" 라고 하시며 대성통곡 하셨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평생을 모셨던 담임 목사님을 대하듯,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 하나를 떠나보냈다기 보다는 가까이 모셔온 목사님 한 분을 떠나 보내시는 듯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억할까요? 장미꽃 인생을 산 사람만 기억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안개꽃 인생을 산 사람도 귀하게 여기시고 기억하십니다. 어쩌면 안개꽃을 더 높이 사실지도 모릅니다. 내 삶이 장미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안개꽃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자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개꽃은 '함께' 하는 마음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꽃피워집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안개꽃 인생을 살아, 하나님께 기억되는 귀한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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