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30108_설교정리_내 인생은 공사 중 (Under Construction) [골 3 : 18~24]

서정원 (JELOME) 2023. 1. 9. 09:01

○ 말씀전문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 설교말씀

루스 그레함 여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 그래함 목사님의 사모님입니다. 워낙 존경받는 빌 그레함 목사님이라 루스 여사님 역시 평소 남편을 존경하고 참 좋은 분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 어떤 사람이 여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여사님! 여사님은 한번도 목사님과의 이혼을 생각한 적은 없지요?" 그러자 여사님이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예, 없습니다. 그러나 죽여버리고 싶다 생각한 적은 많습니다" 여사님의 묘비에는 살아계시는 동안 여사님의 부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공사 끝! 그 동안 인내에 감사합니다"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면 그 배우자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비록 밖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면면을 다 들여다 보게 되면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이 인간입니다. 다만,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부족한 점을 꾸준히 다듬어 가는 사람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루스 사모님은 평생을 자신을 다듬어며 살아왔고, 죽어야만 그 공사를 멈추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에는 각고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새해를 맞아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가장 먼저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깨우치게 해줍니다. 그곳은 다름아닌 가정입니다. 18절부터 20절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가정 안에서의 일입니다. 본문이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은, 가정이 새로워질 때 인생이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곳은 가정이라는 곳입니다. 

그럼 우리가 이 가장 소중한 가정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갈 수 있으려면...

 

1. 성령의 능력을 사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은 목회입니다. 교회 일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는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인들 간에 갈등이라도 발생하면 정말 힘듭니다. 진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회 보다도 더 힘든 일이 있습니다. 바로 가정입니다. 교회에서는 참고 인내하는 힘이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책이 내 마음을 절제하고 인내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그것이 잘 안됩니다. 별것 아닌 일에 욱 하고, 은혜를 깨뜨려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벽에 머리라도 박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혼자 되지 않는 것, 스스로는 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늘 잔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어지는 말씀은 그냥 던져지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배경을 이해하려면 에베소서 5장과 연결해서 묵상하면 좋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리고 에베소서 5장 22절과 25절에는, 오늘 본문과 똑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다시 말해 오늘의 본문 말씀에도 그 전에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받으라" 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오늘 말씀은 우리가 새 옷으로 입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곳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성령충만함 입니다. 성령충만을 나타내야 할 첫 장소가 가정이 되어야 하고, 성령충만의 목적지 역시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을 가져도 바테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아무리 좋은 냉장고와 TV를 사도 전기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가정일지라도 성령충만이 없으면 새로운 가정을 옷 입을 수 없습니다. 내 힘, 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는 데, 성령의 도움 없이는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루어가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도록 해야 합니다. 

목회보다 가정 사역이 더 어렵구나 하고 느끼고 있을 때, 어느날 중요한 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섬겨야 할 교인들을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이 사람들 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역을 할 때, 사람을 바라보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목회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인내함으로써 해결해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힘들게 만드는 자녀, 힘들게 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아무리 참고 이해하고 인내하려고 애써 봐야 잠시 뿐입니다, 진정한 해결은 주님의 사랑으로 옷 입고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 분의 힘, 늘 성령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 순종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자 같은 선배 목사님이 있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럽고 늘 닮고 싶은 분입니다. 어느날 목사님 부부를 만난 자리에서 "사모님, 목사님 같으신 분과 사시니 좋으시죠?"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사모님이 "한번 같이 살아보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의 고백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은혜가 온 몸을 감싸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여 남편을 바라보는 순간 예배를 통해 느꼈던 그 마음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이런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하며 사나?' 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내와 어떤 문제로 언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로 공격하고 논리로 내 주장을 하며 다투다가, 이러다간 서로 상처만 남기겠다 싶어서, "미안해, 잘못했어" 하면서 갈등을 접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한마디에 다시 감정이 욱 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아내의 한마디는 "뭘 잘못했는데?" 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부간의 모습은 천태만상입니다. 한번도 부부싸움을 해 본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믿기지 않는 포장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늘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부부, 그 배우자에게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시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이 말, 오래 산 부부일수록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순종할 수 있는 비결을 오늘 본문 18절과 20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주요한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입니다. 가정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22~24절) 여기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단어는 '주께' 입니다. 

그럼 비결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순종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순종의 대상은 주님이지 사람이 먼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부족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 순종하려니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보이면, 배우자가 내게 주는 거부감이 덮어집니다. 배우자든 미움의 상대이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예수님께 순종함으로써 배우자에게 순종하면 됩니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얘기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모 손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고모는 결혼도 하지 않고 남겨진 조카들을 돌보았습니다. 오빠를 대신해서 조카들을 키우다 보니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잘 키워야하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카의 작은 흠에도 잔소리가 심했습니다. 조카는 그 고모의 잔소리가 너무 지겨웠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도 고모 앞에 가면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우리 예수님이 한번 고모를 만나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열려다가 잠시 그대로 서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대로 들어가면 또 고모와 다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고모를 한번 만나주세요" 그리곤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현관 입구에 서 계시는 고모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것이 보였습니다. 부쩍 야위어진 고모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고모를 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동안의 엉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안 되는 것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로 인해 고모도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모의 잔소리 때문에 고모에게 순종하지 못했던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의탁해서 순종했기에 고모에게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사람을 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그것이 새 옷을 입고 새롭게 변화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3. 결혼 (인생)의 목적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의 목적을 '행복'에 둡니다. 예쁜 여자를 만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면 행복할 것 같이 여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결혼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에베소서 5장에서 그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1절과 32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혼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에베소서 5장 25절부터 27절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하심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 결혼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어질러져 있는 방을 깨끗이 하려면 쓰레기를 치워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려면 죄성을 죽여야 합니다. 죄성은 부부의 마음이 서로 맞지 않을 때 잘 드러납니다. 아내의 반응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을 통해서 내 죄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내게 고집과 아집과 분노와 가부장적인 기질이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것을 깨닫게 될 때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를 죽이고 예수로 살게 됩니다. 그것을 드러내고 나를 거룩하게 만드는 터가 바로 가정이요, 그 가정을 이루는 결혼입니다. 행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결혼하게 하심의 첫째 목적은 여기 거룩에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변화를 위한 새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나의 진면목은 바로 이 가정에서 드러납니다. 교회에서는 목장 교제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냥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곳에서는 우리의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포장된 삶을 살다가 갑니다. 우리가 새해에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야 할 첫 번째는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개척을 하기 전에 크게 아픈 적이 있습니다. 준비해야 할 일도 많은데 누워 있으려니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육체적인 아픔 보다도 마음의 무거움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힘든 마음을 털어버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병원 주변을 걸었습니다. 하루 종일 병실에서 간호하던 아내가 말없이 곁에서 걸어주었습니다. 2~3시간을 걸었는데 불평 없이, 쉬고 싶다는 말 없이 묵묵히 같이 걸어주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 줄 사람은 아내 밖에 없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가정과 아내에게 소홀합니다. 이 새해 벽두에 우리가 다시 돌아보고 소중히 해야 할 사람이 아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가정이 좋은 모습으로 변하기를 바랍니다. 새로 옷 입기를 바랍니다. 그 새 옷을 그리스도로 옷 입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잔소리 한다고 욱 하지 말고, 아내를 통해 내 죄성을 깨닫고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바랍니다. 부부가 변해야 자녀들도 변합니다. 좋은 가장을 세우는데 좀 더 열심을 다하는 2023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노래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하덕규씨가 작곡한 '가시나무'입니다.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라는 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공사중입니다.

마지막 끝자락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