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공동기도
1. 한국 사회 내 당면한 많은 어려움들이 극복되고 온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게 하옵소서
2. 각 선교지마다 선교에 대한 새로운 계획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선교사님들의 일상에 주의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3. 모든 성도님들의 삶을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시고 다음 세대의 믿음이 어려운 시기에 잘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 설교요약
바다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폭풍을 만나는 것입니다. 폭풍으로 파선이 되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폭풍과 같은 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폭풍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우리는, 내가 그간에 익혔던 잔재주나 능력으로 그것을 극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구현우 목사님도 [말씀이 임하는 사람에서], "삶에서 폭풍을 만나면 우리가 가진 것이나 알고 있던 것이 십중팔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우리 소유나 지식이 얼마나 하찮고 깨어지기 쉬운 지를 여실히 드러낼 뿐입니다. 그런 때는 인생의 잔재주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가지고 폭풍을 통과해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그 폭풍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에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 같은 현실을 뚫고 나갔던 한 가정에 대해 얘기해 줍니다. 그들의 가정을 통해 폭풍 같은 어려움은 일상적인 가정과 삶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주변에 맴돌고 있음도 보여줍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이 폭풍 같은 어려움이나 고민을 만나면, 오늘 본문을 통해 그 처방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그 처방은...
1. 시련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무너지거나,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늘 속을 썩이는 남편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왜 내게만 이런이 일어나느냐고 부르짖습니다. 이웃이나 친구들의 사는 모습과 비교하게 되어 더욱 힘들고 좌절스럽습니다. 자신을 자학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폭풍 같은 현실은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도 만찬가지입니다. 1절 서두에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쉬운 성경에서는 "영웅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기에 그 땅에 흉년이 있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사람 아래서는 늘 풍년이 들고, 소출도 2,3배나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예상치도 못한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곳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스리는 곳이었습니다. 주인공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자 함은,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스리는 곳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4장에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시고,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가다가 역풍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간 길에서도 순풍이 아니라 역풍을 만났습니다. 24절입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믿으면 고난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곳은 없습니다. 순종하며 사는 삶에도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풍과 폭풍도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코로나도 있을 수 있고, 암도 찾아올 수 있고, 사업에 실패도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오히려 건강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고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릭 워렉 목사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명저를 남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책의 내용에도 감동해야 하겠지만, 그 분의 지나온 삶, 고난의 삶을 헤쳐나온 인생에 더욱 감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 분에게는 정신적 장애로 자살을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도 심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간질이란 언제 어떻게 도질지 모르므로, 그 분이 한국에 와서 강의나 설교를 할 때도, 항상 두 분의 목사님을 대동하고 오셨습니다. 만약 강의나 설교 중에 간질이 일어나면 다른 목사님이 대신 계속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기에, "목적이 이끄는 삶"을 고백하고 발간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과정에서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왜 내게만..." 이라는 현실 속에 빠질 때 입니다. 이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은 누구든 어려운 현실이 닥쳐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개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척 힘들어 좌절하고 싶었을 때, 주님이 "왜 너는 왜 안되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려움, 그 폭풍이 왜 네게는 일어나면 안 되는데?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한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때 건강한 신앙생활을 회복하고, 또 헤어날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상황에 요동하여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출신에 대한 것입니다.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입니다. 유다는 '찬양' 이라는 뜻이고, 베들레헴은 '떡집' 이라는 뜻이며, 에브랏은 '곡물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풍부한 곳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도저히 아픔이라고는 없을 듯한 그곳에서 흉년이라는 아픔이 발생했고, 그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도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지는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주인공인 나오미의 뜻은 '기쁨'이며, 남편인 엘리멜렉은 '여호와는 나의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았던 그와 그 가정에 환란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요동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열심히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웃 모압이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유독 눈에 뜨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모압지방'이라는 단어입니다. 흉년이 찾아온 자기 고향이 아니라 이방땅인 모압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곳은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땅은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남편도 죽고 아들들도 죽게 되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우리도 환란이 닥치면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내 눈에 보이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고 엎드려 갈 길을 구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주변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편 121편 1절과 2절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찬수 목사님의 [붙들어주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렁이는 피부 감각에 따라 움직이고 피부로 숨을 쉰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가 와서 흙 속에 물이 차면 숨쉬기가 어려워 지렁이들이 숨 쉴 곳을 찾아 도로 위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렁이가 흙 밭으로 뛰쳐나간 것은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간 것입니다. 숨 쉴 곳을 찾아 나갔다가 햇볕이 내리쬐는 도로 위에서 온몸에 흙을 뒤집어쓴 채 비참하게 뒹굴며 죽어 가는 것입니다. 인생에 흉년이 찾아오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내 의지로 한번 해보겠다고 아스팔트로 뛰쳐나가는 지렁이 같은 인생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그런 초라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거기서부터 회복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환경이 막힐수록 떠나지 않고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움이 있고, 새로운 하늘길이 열리게 됩니다.
3. 영적인 민감성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그럴 때 도망가지 않고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우리에게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영적 민감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던 신앙을 점검해 보고 더욱 성숙한 믿음의 수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 1절부터 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 나오미의 가족들은 어떻게 희망을 찾아가는가를 6절에서부터 보여줍니다. 6절의 Key 단어는 '듣고'입니다. 이 '듣고'라는 단어는 '솨메아' 인데 '듣고 깨달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은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양식을 주시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테지만,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던 그들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들은 것은 양식에 대한 소식이었지만 그들이 깨달은 것은 여호와께서 은혜를 주셔야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주권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듣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이 듣는 귀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민감성입니다.
이 주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그들에게 다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돌아오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돌아오라는 말씀이 열 번 이상 나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나오고, 아들들이 죽었을 때도 나옵니다.
지금 우리의 귀에도 이 돌아오라는 말씀이 들립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시며 우리 주변에서 기다라고 계시는데 우리가 이 들아오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영적 민감성을 되돌아 보고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돌아오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민감할 때 만감하고, 둔감할 때 둔감하라"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반복하며 꾸준히 각인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일반적인 삶에는 둔감하고 영적으로는 민감해야 합니다. 새해 들어서 말씀과 기도에 더욱 민감하게 생활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늘 손을 내밀고 계신데도 우리가 그 손을 뿌리치고 있지는 않은지, 못 들은 척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저기 가면 살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한 피난처라고 부르짖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단을 바라볼 지, 하나님을 바라볼 지, 민감성으로 옳은 쪽으로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130_설교정리_인생은 해석이다 (룻 1:11~14) (0) | 2022.01.30 |
---|---|
220123_설교정리_하나님의 일 (요 6:27~35) 박은조 목사 (0) | 2022.01.23 |
220102_설교정리_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눅 5:1~5) (0) | 2022.01.02 |
211226_설교정리_익숙한 것이 아는 것은 아니다 (눅 2:41~47) (0) | 2021.12.26 |
211219_설교정리_에녹처럼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라 (창5:21~24) (0) | 2021.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