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20123_설교정리_하나님의 일 (요 6:27~35) 박은조 목사

서정원 (JELOME) 2022. 1. 23. 18:15

○ 말씀전문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설교요약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라고 묻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한번쯤 물어봐야 할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우리는 몸이요 예수님은 머리라고 했습니다. 몸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의 명령에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행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될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오해 몇 가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교회에 와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교회 밖, 즉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어디든 어떤 일에서든 계시고 주인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분법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일을 분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둘째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 있고 하나님의 아닌 일이 있다는 사고입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습니다. 깡패짓은 절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도둑질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설교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일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설교도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믿는 것, 즉 예수님을 믿는 것,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데 뜻을 두고 설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교자가 교인들의 마음을 움켜쥐어서 자신의 뜻대로 이끌고 가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백신이 물백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치적 신념으로 강대상에 서서,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는 마음을 섞어 설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꿈을 갖고 사역을 하다가, 처음으로 강남에 있었던 한 교회에서 처음으로 Full Time 강도사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 서른 살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 그곳에는 손박사라는 담임목사님이 교회를 섬기고 있었으며, 좋은 말씀의 언변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손박사님이 내게 한 달에 한번 주일 낮 예배를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손박사님의 설교 말씀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내 말씀 솜씨를 알고 있기에 극구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를 그 교회의 다음 담임목사로 키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주일 예배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문 앞으로 나가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성도들을 배웅하였는데, 한 사람도 나에게 말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손박사님의 설교 능력과 내 능력을 비교하는 마음이 깊어져 갔고, 마음은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심지어는 목회를 그만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설교가 고역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기를 1년쯤 되었을까 그날도 설교를 마치고 깊은 자괴감 속에서 내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내 사무실의 내선전화가 울렸습니다. 그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에 거의 울릴 일이 없던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중고등부에서 헌신적으로 섬기는 은집사님이라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40대 중반의 여성으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서 남부러움 없이 살아가고, 교회에서도 정말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한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한번의 바람으로 칼같이 버리고 이혼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그분이 울면서 하시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박 강도사님, 내가 10년 전에만 강도사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가정을 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오늘 설교 말씀을 그 때 들었다면, 단 한번의 남편의 바람을 용서할 수 있었을 텐데, 자기가 버린 그 남자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귀가하는 길에 눈물을 지체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전화가 지난 일 년간의 내 고민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전하게 하신 말씀을 붙잡고 준비하고 전하면, 누군가 이 말씀으로 생명을 얻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잡기도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동안 나는 늘 손박사님과 나를 비교하고 그로 인해 생긴 질투심으로 사람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도 이처럼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부부생활을 해가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배우자를 주신 것은 돕는 배필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돕는 배필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배방에게 요구하며 살아갑니다. 가정의 주인이 그 배필을 주신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런 가정생활에서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되지 못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는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다 결혼을 했는데 둘째 딸만 결혼을 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딸의 생각에 일찍부터 동조하다가 아내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자녀에 대한 분명한 한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삶을 사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자녀를 키운다면 그 자녀 키우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도 이 목적을 바라보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지 한번 쯤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교회를 떠나고,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또 떠나고, 직장을 다닐 쯤 해서 보면 열 명 중에 한명만 남고 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교회를 다니시는 부모를 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바라보고 인생관과 가치관을 형성해 갑니다. 돈이 최고라는 부모의 모습, 돈 돈 하는 부모의 평소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부모 아래서는 그들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부모가 그들에게 대단한 무슨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대단히 성공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보스톤의 한 보호소에 어린 아이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언니의 이름은 앤 설리반이었습니다. 보호소에 들어온 후에 그녀의 동생마저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 정도의 나이였던 앤의 울부짖음은 광란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실명과 실어증에 이르렀고, 의사들도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정신병원 지하 독방에 감금되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는 로라라는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녀에게 특별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원장을 찾아가 자신이 틈나는 대로 앤을 찾아가 말도 걸어주고 책도 읽어주고 싶다며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원장의 허락을 얻는 그녀는 틈틈이 앤을 찾아가 먹거리도 주고 말도 걸었습니다. 하지만 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방문을 계속했습니다. 몇 주가 흘렀을까 로라는 자기가 남겨두고 간 간식 중에서 초콜릿 하나가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반응이다 싶었던 로라는 더욱 열심히 앤을 찾았습니다. 조금씩 반응을 보인 앤이,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그렇게 열심을 다하는 로라를 보고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되어 회복이 되었습니다. 독방에서 나오게 된 앤은 시각 장애인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후원기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시각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로라는 죽음을 맞이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앤은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신문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한 아이에 대한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두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느냐며 만류했지만, 그녀는 로라를 통해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가정교사에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48년 동안 그 아이와 더불어 살았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헬렌 켈러입니다. 헬렌 켈러 역시 앤 설리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금 편하게 살면 됐지, 이만큼 십일조를 하며 신앙생활 하면 됐지, 하면서 살아갑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살지 못하는 삶입니다. 민감한 하나님의 말씀, 부름을 들으려고 하며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한번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를 보고 우리 집에 하나님이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는지는 부차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내 삶에 임하게 됩니다. 열심히 설교하며 목회를 하다가 천국으로 갔는데, 만약 하나님이 난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모골이 송연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매사를 하나님의 일로 하는 이 한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