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0712_설교정리_ACTS29 ⑥ 성전예배와 가정예배가 살아있게 하라 (행2:42~47)

서정원 (JELOME) 2020. 7. 12. 20:33

○ 말씀전문

42 그들이 사도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재산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내용관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까지 잡아들이려는 상황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두렵고도 잔인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에 모여 예배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가정에서도 가정예배를 충실하게 드렸습니다.

 

○ 설교요약

초대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혹독한 핍박 속에 놓여 있었는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피나는 신앙심을 역사를 통해 알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이 더욱 교훈적이고 존경스럽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일터가 무너지고 예배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 역시 그때 못지 않은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켜야 하는 절대적 사명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야만 사도행전 29장을 써 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도 이 같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흔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울진행복교회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1908년에 설립된 침례교회인데 지금껏 36명의 목사가 목회를 이끌어 왔고 순교자도 3명이나 나온 성령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 마루바닥 아래에는 한 평 남짓한 지하 대피소가 있습니다. 그 대피소는 625동란 시절 공산당으로부터 핍박을 당했을 때 대피를 하던 공간이었고, 그 이후에도 영적 회복이 필요할 때마다 그곳으로 내려가 통곡하며 기도를 드렸던 곳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회다운 교회의 모범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우리가 혹독한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의 모습을 유지하여, ACTS29의 비전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

 

1. 성전예배와 가정예배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고 부르짖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특정한다면 두 개의 날개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날개는 성전예배라는 대그룹 예배이고 또다른 한 날개는 가정에서 드리는 소그룹 예배입니다. 이 두 예배가 잘 조화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는 박해의 절정기에 성전으로 가서 모인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또한 거기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예나 종의 신분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혹독한 노예 생활 속에서 성전에 간다는 것은 커다란 헌신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교회로 모이기에는 힘든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 희생과 헌신을 지불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예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정예배가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정에서부터 공동체의 힘을 키워 갔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 있었던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에 마오쩌뚱은 종교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여겨, 종교 말살정책을 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그리스도인을 70만명 정도, 크게 잡아도 200만명 이하였다고 합니다. 이 종교말살 정책으로 인해 중국교회는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변화기에 역추적을 해보니 중국교회 성도 수가 1,0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말살이라는 혹독한 핍박속에서도 5배나 되는 성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지하교회와 가정예배였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힘든 목회 중에 엎드려 간구하던 중에 가정예배를 회복시키라는 말씀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교회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릴 수 있던 환경에서도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주일에 한 시간 남짓 주어지는 시간적 제약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해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시간입니다. 그 수단이 가정예배가 되면 됩니다. 이 가정 예배를 세워서, 가정이 다시 살아나고, 다음 세대가 살아나는 위대한 ACTS29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2. 진정한 코이노니아 (KOININIA)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부흥한 저변에는 또 하나의 동인이 있습니다. 진정한 교제입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니라" Koinonia는 교제, 사귐, 함께 함의 뜻입니다. 교제하는 삶을 살았던 구체적인 정황이 44절과 45절에 나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핍박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의 삶의 형편 역시 몹시 어려웠을 것입니다. 노예나 종의 신분이어서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업도 어렵고, 일터도 무너지고, 심령도 불안하기 그지 없는 지금이지만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아 나누고 도와야 합니다.

뉴욕 퀸즈에서 있었던 사건이 생각납니다. 한 여인이 잔인하게 살해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일주일 후에 뉴욕타임즈 신문의 로젠타 편집장에 의해 알려진 사고의 진상은 모든 사람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살해된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려 38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수차례에 걸쳐 찔려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제지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38명이 특별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신고를 하겠지, 도와주겠지'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에게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웃과 가정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교제 회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 집사님의 친정 아버님이 시골에서 지붕공사를 하시다가 떨어져서 낙상사고를 당하시어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오후 3시경에 사고가 났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13간 여를 방치되셨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경에 일하러 나가던 이웃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우리 어른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집사님께서 아픔 마음으로 우리 교회 기도방에 사연을 올리셨고, 교인들의 수많은 격려 댓글과 기도가 빗발쳤습니다. 우리 교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Koinonia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만드신 목적, 그리고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Koinonia가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 기도 덕분에 전신 마비로 꼼짝도 못하셨던 아버님이 신경을 회복하고 지금 재활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지난 월요일에 문병을 갔었는데, 그 와중에도 아버님은 자신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만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우리 이웃에는 우리가 함께 교제하고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의 내미는 손길이 진정한 교제를 회복하고, 그 교제를 통해 ACTS29가 시작 될 것입니다.

 

3. 지속적인 기도의 힘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위대한 역사를 이룬 배경으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지속적인 기도입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니라" They were continually devoting themselves. 초대교회 기도의 특징은 기도에 대한 집중과 지속입니다 1장 14절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도에 힘썼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지속적인 기도가 초대교회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역사의 첫단추는 바로 기도였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은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가 옥에 갇힌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성도들은 간절히 기도하였고 이 기도로 인해 옥문이 열리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기도가 살아있을 때 우리의 삶의 질곡인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사면초가의 시대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업이 막히고, 가장이 일터를 잃어 가정이 막히고, 자녀들이 학교에 가지 못해 교육이 막히고, 우리 신앙의 영성이 막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는 하늘문이 열리기를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늘 문을 여는 키는 기도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얘기 했습니다. "베드로를 감옥에서 이끌어 낸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고, 그 천사를 움직인 것은 초대교회 교인들의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였다"

1960년 케냐에서 일어났던 메튜와 히긴스 선교사의 고백입니다. 그 당시 케냐에서는 마우마우 당이라는 비밀 결사대가 조직되어 백인들을 공격하고 죽였습니다. 이들 선교사는 선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이로비 공항으로 가야했는데 이 마우마우가 출몰하는 지역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노심초사하며 그 지역을 지나가다가 설상가상으로 그 지역에서 차가 고장났고,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시편 4편 8절을 기억해 내고는 한 시간 정도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편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그 기도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밤을 보내고 다음날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나이로비 지역의 목사님이 전송을 나와서는 "전날 밤에 마우마우 당이 백인들이 그 지역을 지난다는 정보를 알고는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열여섯명의 건장한 보디가드들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라고 전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에게 클리브랜드라는 친구가 마중을 나와서는 오는데 별일이 없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갑자기 그들 걱정이 나서 자기가 섬기는 교인들에게 기도요청을 했었다고 하며, 기도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15명이었다고 합니다. 그와 15명을 합쳐 16명이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한 날이 언제였냐고 물었더니 3월 23일쯤 된다고 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그들이 마우마우 지역을 통과한 날이었습니다.

우리의 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천군 천사의 힘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 이들을 부르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직장과 교회, 가정을 화목시키고 살립니다. 우리도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로, 이 난관을 벗어나게 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