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사도행전 2장 37~41절)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 말씀요약
마더 테레사 수녀가 어느날 길에서 낡은 옷을 입고 동냥을 하는 한 어린 소년을 보고는, 데리고 와서 손수 목욕을 시키고 옷도 새로 입힌 후에 따뜻한 음식을 마련해서 먹였습니다. 그리고 잠자리도 마련해서 기숙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아이는 도망을 치고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그 아이가 배회하던 곳으로 가서 다시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전날과 같이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웠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여러 차례 똑 같이 도망을 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수녀님은 한 젊은 수녀님에게 그 아이를 따라가 보게 했습니다. 젊은 수녀님이 그 아이 뒤를 몰래 따라가 봤더니 어떤 허름한 움막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 움막집 안에서는 한 여인이 그 아이가 받아온 음식 찌꺼기를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얼굴도 그 아이의 얼굴도 너무 편안해 보였습니다. 수녀님이 그 아이에게 왜 편안한 잠자리와 음식을 마다하고 여기로 도망치느냐고 했더니 그 아이는 "여기가 내 집이고, 여기에 내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집, 내 어머니의 사랑이 여기에 있기에 여기가 행복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영적 갈급함이 있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이 아이의 집과 같은, 엄마의 품과 같은 그런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의 말씀이 그런 따스함을 주는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도 ACTS29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섯번째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가 ACTS29의 역사를 이루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성령님의 부어주심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 특히 부어주심의 역사입니다. 33절입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부어주다는 것은 한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같이 Pour out, 즉 흠뻑 쏟아준다는 뜻입니다. 부어준다는 말은 17절과 18절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부어준다는 동사 뿐만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단어는 "내가" 입니다. I will pour out my spirit.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이 성령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부어주심의 또 다른 의미는 "임재하심" 입니다. 부어 주심이 있으면 내게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고, 그 임재하심으로 인해 나타나는 삶의 현상은 예언과 환상과 꿈이 있게 된다고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단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이 있으면 미래지향적이 됩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늘 지금의 현실에 얽매이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두번째는 가능성과 도전의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17절에서 젊은이들은 환상 (비전)을 보게 되고, 늙은이도 꿈을 꾸게 된다고 했습니다. 늙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사는 늙은 사람들 조차도 꿈을 꾸게 한다는 힘을 줍니다. 요즘 사춘기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가 비전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이 없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고 작은 난관 앞에서도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걱정되는 것이, 이로 인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소망, 비전이 꺾이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만약 느슨해 있다면, 이것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엎드려 기도하며 성령의 부어주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부어주심을 통해 우리의 신앙, 우리의 소망, 우리의 비전이 꺾이지 않도록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영적인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에게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었고, 그 부어 주심에 따라 그들 모두는 영적 각성으로 반응했습니다. 37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말씀을 제대로 듣게 되면 나오는 탄성이 "우리가 어찌 할꼬" 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살아오지 못했기에, 복음에 감명되었기에, 그럼 내가 어찌 해야 하나 하는 각성입니다. 말씀에 찔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찔린다는 말은 "카테뉘게신" 이라고 하는데 젖은 땅에 타이어 자국과 같은 패인 자국이 깊게 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이 선명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뚯합니다. 이 자국이 영적 은혜입니다.
영적 각성이 일어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 회개가 드러날 때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3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지금은 한국 교회의 위기 시대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코로나 사태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위기의 때입니다. 이 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영적 각성운동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파국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회개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영적 각성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중의 한 분으로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있습니다. 1734년부터 미국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청교도 신앙이 급속히 쇠락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생활이 나아지자 다들 삶이 세속화 되고, 주일 성수마져 잊어버리고, 파티를 즐기고, 유흥가로 빠져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시골의 작고 평범한 교회에서 에드워드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통곡이 터져나왔습니다. "회개하라 영적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회개 운동은 주변의 다른 교회로 퍼져 나갔고,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미국 제2차 대 각성운동을 ① 기도운동의 역사, ② 회개운동의 역사, ③ 성령의 역사 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 봐야 할 것입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기도다운 기도 한 번 못했다고 자책하는 나, 회개다운 회개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자책하는 나부터 시작하면, 이 땅에 회개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도행전29장의 역사를 쓸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데스티니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데스티니 (Destiny)는 운명, 숙명, 사명, 소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알아야만 사도행전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120명을 대상으로 한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 하심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7절도 22절, 23절, 24절도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28절과 30절의 주어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역사의 줄기는 하나님입니다. 사도행전을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즈음에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일어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랫 동안 예수님을 따르고 제자로도 불림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늘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자신은 예수님과 다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보고, 부활을 보고,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하고서야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예수님께 주신 데스티니이고, 이제 자신에게 주신 데스티니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에 대해 가지고 계신 데스티니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데스티니를 알게되면 ① 이것을 발견하면 행복하고 멀어지면 허무하거나 공허해집니다.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고, 순간 순간 허무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② 데스티니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큽니다. 모세에게 주신 데스티니는 출애굽이었고, 베드로가 받은 데스티니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③ 데스티니를 발견하게 되면 장벽도 돌파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명이라 생각하면 그때부터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장애물이더라도 확고한 데스티니를 깨닫게 되면 그 장애물도 거뜬히 돌파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발견하지 못하면, 사소한 장애물도 험지가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만약 내 삶에 자주 허무함이 찾아오거나, 웃음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우리는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찾아봐야 합니다. 가치있는 인생,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선 반드시 이 데스티니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가 깊이 기도하고 묵상하여 그 데스티니를 찾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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