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0628_설교정리_영적인 목마름을 가진 삶이 되라_ ACTS29 (4)

서정원 (JELOME) 2020. 6. 29. 20:37

○ 말씀전문

[사도행전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설교요약

코로나로 인해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도 무너짐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그러던 중에 오래 전에 읽었던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이라는 책이 생각나 다시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먼저 예배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시다. 예배를 마치고 떠날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예배를 기뻐하셨는가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의 예배를 되돌아 보게 했습니다. 또한 교회에 대한 고백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삶이 수반되는 종교이며, 그 삶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 내가 끝내 교회를 포기하지 못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절실히 필요한 그 무엇이 교회 안에 있음을 마음 깊이 느낀다’. ‘잠시 교회를 떠나 있을 때면, 고통 받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그래서 교회를 떠난 나는 매번 빙 돌아서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결국 다시 교회, 포기할 수 없는 교회였다. 나의 순례의 끝, 방랑의 끝은 다시 교회로였다’. 교회에는 늘 감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처럼 무기력함을 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가 사모해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고, 예배다운 예배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묘책을 오늘 말씀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6월 초부터 우리가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ACTS29의 비전을 이루는 삶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 영적인 목마름이 어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폭포수 같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흘러내림의 시작은 영적인 목마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며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을 죽이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곳이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그곳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손해를 보고 핍박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그곳에 다같이 모인 동인은 영적 목마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오순절 강림이라고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절기의 크기로 치면 추수감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장막절이 오순절보다 더 크지만, 굳이 오순절을 앞서 부르는 것에도 뜻이 있습니다. 오순절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농업적인 배경입니다. 첫 수확을 기념하여 드리는 절기입니다. 또 하나는 역사적 배경으로, 출애굽 시에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두 배경을 하나로 요약하여 정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살기 위해서,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양식을 사모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삶의 소망에 응답 받은 것이 성령강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넘어지고 쓰러지기 쉬운 삶 속에서 항상 새로운 예배, 성도로서의 새로운 삶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 목마름이 있을 때 우리는 성령강림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특히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2장을 반복해서 읽다가 특별히 눈에 들어온 단어는 갑바도기아였습니다. 29절입니다. “우리는 바대인 메대인과 엘람인과메소보다미아, 유대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갑바도기아는 현재 터키에 속해 있는데, 수 많은 암굴교회들이 있습니다. 발굴된 것 만도 300개가 넘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로마의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숨어들었던 곳입니다. 비굴기 굴처럼 작은 암굴 속에서 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친 곳입니다. 그들의 성령 회복에 대한 갈급함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이 갑바도기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갑바도기아와 같은 영성입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은 어떤 시련이 와도 굳건히 지킬 영성입니다. 이것을 지키겠다는 강한 목마름이 있다면 우리도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가 지부지 되고, 영성이 희미해지기 쉬운 지금, 우리는 강한 영성의 목마름으로 재무장해야 하겠습니다.

 

2.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으면 사도행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한 구분을 잘 하지 못합니다. 성령침례와 령충만을 쉽게 구분하려면 결혼과 결혼생활를 비유하면 이해 하기가 쉽습니다. 성령침례는 결혼과 같습니다. 우리 일생에 딱 한번만 주어집니다 반면에 성령충만은 결혼 생활에서의 사랑과 유사합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부부간의 사랑이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그 사랑의 깊이가 다른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계속해서 받아야 하는 반복된 역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3가지 경우를 통해 동반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기도할 때 동반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주에도 권면을 드렸듯이 한 시간 기도 시간 깨어 있기운동을 지속하기를 권합니다. 둘째는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는 서서 하지만 말씀을 들을 때는 앉아서 듣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셋째는 찬양할 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찬양을 할 때 가장 큰 은혜의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의 찬양을 여러 번, 오래 듣습니다. 그러면 찬양이 외워지고 외워진 찬양은 수시로 흥얼거려지게 됩니다. 악보를 보지 않고 자유로이 부를 수 있는 찬양이 20곡만 있으면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수시로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3시에 깨어있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단어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3라는 단어였습니다. 15절과 33절을 엮어서 보겠습니다.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에 충만한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술 취한 것 아니냐고 들 했습니다. 그러자 아니라 성령 충만한 것이라 한 것입니다 제3시는 우리의 오전 9시에 해당합니다. 아침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일상적인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술 취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이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요한이 이전의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예수님 생각하기가 제일 어려운 과제라고 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그 일상에 묻혀서 예수님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때는 예배의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입니다. 일상에서 영성이 충만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로마서 12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일상의 삶을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일상이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할지 생각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몸부림 치는 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내 삶이 아름다운 영적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 삶을 통해 새로운 사도행전 29장의 역사를 써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