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요한복음 21장 1~3, 15~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설교요약
"탕자의 귀환"은 램브란트가 생애 말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인생 말년에 모든 것을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용서의 사랑"을 표현한 명화인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버지의 양 손 모습이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왼손은 억센 남자의 손으로 시련과 고난을 겪어온 인생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오른손은 부드러운 여자의 손으로 용서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도 이 능력의 손과 따뜻한 사랑의 손을 함께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본문은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는 심한 자책감으로 낙심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그를 회복시키시는 내용입니다. 21장의 키워드는 회복입니다. 실패한 베드로의 회복을 잘 보여줍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회복입니다. 일상의 회복, 예배의 회복, 경제적인 회복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에 앞서 구해야 할 회복은 영적인 신앙회복입니다. 그럼 2020년 부활절에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회복해야 할 영적 회복은......
1. 가이사랴 빌립보의 신앙고백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16절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보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으로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열쇠를 약속받았습니다. 모든 신앙인이 다 이 고백을 하지만 유독 베드로의 고백이 높이 평가 받은 것은, 이 대답 전에 예수님이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마16:13)고 물었던 당시의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물었습니다. 빌립보는 도시 이름이고 가아사랴는 로마 황제의 이름입니다. 도시 앞에 황제의 이름을 붙여서 불릴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첫째는 황제의 이름에 걸맞는 도시의 웅장함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전 시민이 황제를 숭배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황제가 모든 것을 주었고, 모든 것이 황제의 것이라고 고백한 곳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 앞에 나타나신 곳이 디베랴 호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베랴는 갈릴리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갈릴리라고도 불리우고, 긴네렛 바다, 게네사렛 호수, 디베랴 호수라고도 불렸습니다. 디베랴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인 디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불린, 다시 말해 황제의 호수를 의미합니다. 가이사랴와 의미가 같은 이곳을 택해 예수님이 베드로를 회복시키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패한 그 자리에서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의 회복이 진정한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에 의해 살아갑니다. 세상의 논리는 황제의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명예와 권력이 앞서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세상의 논리 속에서 주님이 제일 중요하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말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회복하는 2020년 부활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디베랴 호수의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부인하기 이전에 이미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고, 그렇게 될 베드로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셨었습니다. 누가복은 22장 61절입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돌이켜 보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네블렙센"입니다. 눈으로도 보고 마음으로도 본다는 의미인데, 베드로를 이해하시고 받아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그에게 물어주셨습니다. 베드로도 그런 주님의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에게 단절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내 부끄러운 모습을 끝까지 부둥켜 안고 있으면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에서 수없이 쓰러지고 넘어져 왔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예수님이 부활절을 맞아 우리를 찾아주십니다. 그 주님에게 다시 신앙고백을 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최요나 전도사님의 "네가 나의 영광을 짖밟았다" 라는 책을 통해, 세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속도가 아니라 멈춤이다. 신앙은 열정이 아니라 비움이다. 신앙은 즉시 하는 것보다 친밀함이다. 우리는 신앙에서도 무조건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억지로 멈춰서서 바라보게 하십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우리에게 그 멈춤을 요구하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는 신앙의 열매만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하지만 열매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회복시켜주고자 하신 것도 바로 이 친밀감이었을 것입니다.
3. 갈릴리 바닷가의 사명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절~3절은 처음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서 주셨던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처음에 주셨던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버리고 다시 물고기를 낚는 어부로 돌아간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을 놓아버리는 사람은 이와 같이 사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4절).
15~17절에서는 그런 그에게 에수님이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거듭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일깨우는데 쓰신 예수님의 질문을 유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양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먼저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주신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또한 우리는 "나"라는 말이 자신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최요나 선교사님의 "네가 나의 영광을 짖밟았다"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선교사님에게 "너는 이스라엘에 왜 왔느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30년을 오직 선교에 몸을 바친 그로서는 허무하기도 하고 화도 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건 네가 정의한 선교일뿐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정의하는 선교는 다르다. 나는 너부터 선교하고 싶다"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내 선교 대상자 1순위는 너다 라는 것입니다.
가장 변화가 안 되는 것은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남을 변화시키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변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 변화되지 못하고, 말씀 앞에 깨어 있지 못하고, 기도 앞에 깨어 있지 못함이, 저 아프리카 오지가 아니고, 내 마음 속에 있지 않나 살펴봐야 합니다.
이 부활절을 맞아, 내 지신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 있는지 되돌아 보고, 사명을 감당할 만큼 준비되어 있는지를 살펴서, 부족하면 채워서, 하나님의 사명을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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