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사도행전 20장 17절~24절]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설교요약
[하나님의 사람은~]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약해도 될 만큼 강하고,
한가로움을 즐길 만큼 바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만큼 용기 있고,
융통성이 있을 만큼 원칙에 충실하고,
나는 모른다고 할 만큼 지혜롭고,
나는 잘못했어 할 만큼 올바르고,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으나 뛰어난 사람이며,
거절 당하지만 확실한 사람이며,
경기에 질 만큼 자신만만 하고,
편하게 쉴 만큼 부지런하고,
남을 섬길 만큼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
본문의 바울이 바로, 약해도 될 만큼 강하고, 융통성이 있을 만큼 원칙에 충실하고, 남을 섬길 만큼 강한 리더십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바울의 자기 사명서 (Mission Statement)가 바로 오늘의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생에서 혹독한 고난의 때를 만났을 때 제대로 드러납니다. 혹독한 고난 앞에서 무엇을 하는가와 시선을 어디에 두고 가는 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시련 앞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보인 모습은......
1. 상황이 아닌 성령에 매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22절과 23절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제 막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시점입니다. 예루살렘에는 그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비록 고난이 예견된 상황이지만 자신은 성령에 매인 자이기 때문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보인 그의 이 행동으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황에, 환경에, 문제에 매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매이지 않고 성령에 매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바울처럼 성령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미국 같은 넓은 세상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며 출산이 3주 밖에 남지 않은 여자를 데리고 미국으로 간 것입니다. 여자를 미국에 대려다 놓고는 남자는 필요한 것들을 챙겨 오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으로부터 한 여자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여자는 그 남자의 부인이었습니다. 유부남인 그자는 임신한 이 여자를 떼어 버리기 위해 미국으로 데려갔던 것입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자살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차를 몰고 호수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수없이 많아도 눈에 보이지도 않던 교회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녀는 문득 예배나 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시작되는 찬송부터 예배를 마칠 때까지 그녀는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따라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죽고 싶을 때" 였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중에 무려 20번 이상이나 "죽지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녀는 목사님과 상담을 하였고, 지금까지 씩씩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도 끝까지 자신의 처지에만 붙잡혀 있었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교회로 인도하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성령의 힘을 받아들였기에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는 것은 상황에만 만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민감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환경 아래 있더라도 성령에 민감할 때, 새 새명을 얻게 되고, 회복을 얻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5절입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라고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또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라고 왜 걱정과 염려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근심으로 꽉 차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걱정거리로 온통 머리가 지끈거리며 살지만, 바울의 머리 속에는 온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거장인 마틴 루터는 가톨릭으로부터 지속적인 회유와 겁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쓴 책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고 공포만 하면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최병락 목사님이 [쏱아지는 은혜]에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목사님은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변두리 목사인 그에게 설교를 부탁할 교회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남미계 백인 한 사람이 다가와서 "당신이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인가?" 라고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는 한 교회의 평신도 사역자였으며 그 교회에서 중보기도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카페로 들어와 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답니다. 기도의 내용은 "열강을 위해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이었다 합니다. 그의 기도는 너무나 진지하였고,마음을 다한 기도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 그에게 설교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의 교회는 부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5년 쯤 지나서 한 성도 가정에 신방을 가기로 되었어서, 들어가기 전에 근처 커피숍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피숍 한켠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꾸만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신경이 쓰여서 다가가서 자신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5년 전에 자신에게 기도를 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알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커피숍에 들어가서 기도해주라" 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그가 해 준 기도를 붙잡고 목회를 해 온 최목사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했던 그 백인 평신도, 그로 인해 최목사님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지금도 여전히 열려있습니다. 그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살면, 우리도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 주간을 맞아 우리가 성령에 민감하고 말씀에 붙잡힌 삶을 살도록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일은 ① 고난주간 금식, ② 고난주간 저녁기도회, ③ 말씀 보내기 운동입니다. 이 함께 하기에 동참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합시다.
3. 그는 사명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모교회 방송실에서 사역했던 사람을 얼마 전에 만났습니다. 최근에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사직을 하고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는 목사님의 교회가 온라인 영상 예배가 잘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려가서 돕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고, 성령에 붙들여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을 전하는데 자기 목숨조차 바친다는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내 사명, 미션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최근에 또 한 사람 만났습니다. 알고 있던 집사님 한 분이 심방을 청해 왔습니다. 급하게 요청하신 그 분의 요청에 응할 형편이 되지 않아 정중히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다시 전화를 하고는 그 분이 요청하신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병원 중환자실이었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직장의 사장님이 췌장염 말기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중환자실로 들어가 직접 기도를 해 드릴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을 때, 그 집사님은 환자의 사모님에게라도 기도를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모님은 골수 불자였습니다. 병원 밖에는 심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악천후에서 집사님과 함께 사모님을 모시고 바람이 부는 주차장에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골수 불자였던 사모님이 감당못할 정도로 은혜받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먹먹함을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이 심방을 통해 두 가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우리 인생은 대단한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가라 하면 다 그대로 놓고 가야하는 것인데 왜 이리들 악착같이 붙잡고 가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두번 째는 집사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가족도 아니고 단지 일하는 곳의 사장일 뿐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복음에 대한 사명을 붙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었습니다. 과연 내 안에도 집사님 같은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나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힘들어 합니다. 이런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지 되짚어 봐야 합니다. 현장 예배 회복보다도 정말 더 중요한 것은 복음 전하는 것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놓치지 않도록 다시 한번 결단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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