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0329_설교정리_인생의 풍랑을 잠잠께 하시는 예수님

서정원 (JELOME) 2020. 3. 29. 12:40

○ 말씀전문

[마가복음 4장 35절~41절]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바다순종하는가 하였더라


○ 말씀요약

찬송가 371장 "구주여 광풍이 불어"는, 여생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한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의 메리 앤 베이커가 썼습니다. 메리의 남동생은 지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그 동생이 요양차 남부지방을 여행하던 중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똑같은 병으로 부모님을 잃었고 동생마저 잃은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도 같은 병으로 누워있는 상황 인지라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현실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그리스도를 신뢰하려고 해 왔고 주님께 헌신된 삶을 드렸어. 그러나 이번 경우는 참을 수 없어! 과연 내가 이런 고통을 받을 만한 일을 한거야? 하나님께서 이런식으로 내게 진노를 쏟으시다니, 아! 이 고통을 어찌할 수 없을까?”

그런데 수 주일 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친히 메리 마음 속의 폭풍을 잔잔케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을 꾸짖으시던 그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어 “잔잔하라! 고요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점차 그녀는 하나님은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사나, 죽으나, 그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더욱 깊고 풍성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펜을 들어 폭풍우가 치고 예수님의 말씀에 잔잔케 되는 광경을 그림을 그리듯 적어 오늘의 이 찬송시를 완성했습니다.

오늘 말씀 본문 중의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라는 말씀은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 하는 이 시기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말씀의 한 자락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어 코로나로 인한 아픔이 멈추어지는 주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우리가 고난의 풍랑을 잠잠케 하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나 인생의 풍랑을 만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35절부터 37절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여기에는 우리가 눈여겨 볼 세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①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예수님이), ②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감 (예수님을), ③ 큰 광풍으로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 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에서도 인생의 풍랑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렛슨은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 속에서도 인생의 풍랑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고난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난 그 자체보다도, 첫 째는 그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인정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40대 밖에 안된 나에게 어떻게 암이 올 수 있나,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어렇게 사업에 실패할 수 있나 싶은 자괴감이었다는 것입니다. 두번 째는 자신이 이렇게 믿음 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풍랑이 찾아 왔을 때, 내게도 풍랑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화가 램블란트는 만인이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들이 "복음 속에 램블란트가 있고, 램블란트 속에 복음이 있다" 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그린 '풍랑 속의 그리스도' 라는 그림 속에는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거친 풍랑에 휩쓸리고 있는 배 위에서 한손으로는 밧줄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날아가려는 모자를 잡고는,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곧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 풍랑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 뿐만 아니라, 램블란트가 살았던 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누구든 이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듯한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 믿는 인생 속일지라도 병마와, 경제적 어려움 같은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풍랑을 잠재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내 인생의 배에 잠들어 계신 주님을 깨울 수 있어야 합니다.

38절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거친 풍랑 속에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자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거친 풍랑 속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예수님은 정말 깊이 잠드셨던 것이 아니라 아마도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 하고 자는 척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가장 먼저 예수님을 깨웠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조각배' 라는 글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내 인생의 작은 조각배, 저 큰 바다에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내 안에 있는 모든 능력들과 지혜들을 동원하여 출렁이는 작은 조각배 한 척 진정시키려 밤을 세웠습니다. 비바람에 넘쳐 들어온 인생 찌꺼기의 물들을 밤을 새워 퍼냈습니다. 주여 주여 내가 죽게 된 것을 안돌아 보시렵니까? 주여 주여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시나이까?" "그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줄곳 나는 네 작은 배에 함께 있었단다. 내 안에 잠들어 계신 주님,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결코 이제는 주님을 주무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 작은 인생은 주님의 것이옵니다. 결코 내 안에서 잠들어 계시지 마옵소서. 내 안에 잠들어 계신 주님이시여!" 코로나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는 내 안에 주님이 잠들어 계시다는 것, 내가 영적으로 잠자고 있다는 것, 그 잠에 취해 살아가고 있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가 코로나로 가장 큰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줄리안 어번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매일 수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때 이 기도를 합니다. 서로 이야기 할 때, 비록 한 때는 맹렬한 무신론자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병든 사람들을 돌볼 수 있도록, 주님께 계속 도와달라고 함께 기도하면서, 평화를 찾아 매일 함께 같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6일 동안 집에 없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무가치함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마지막 숨을 이용하여 남을 돕고 싶습니다. 나는 동료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는 동안 주님에게 돌아온 것이 행복합니다"  풍랑 속에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찾아야 할 때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자! 세 가지'를 요청드립니다.  ① 매일 새벽 5시 30분에 나라를 위해 새벽기도를 드립시다. ② 매일 저녁 9시에 교회와 목장과 가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립시다. ③ 사순절까지 매일 요한복음을 한 장씩 묵상하여, 말씀과 기도와 예배 앞에 깨어 있도록 합시다.


3. 주님만이 내 인생의 풍랑을 잠잠께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 앞에서는 인간은 속수무책이며, 잠잠케 해 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람이 잠잠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코로나도 꾸짖어 말 한마디로 잠잠케 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 주님을 믿으면 말입니다. 두번 째는 제자들이 보인 모습입니다. 41절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바다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도와주실 정도로만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 한 마디로 풍랑을 잠재우고 파도를 잠잠케 하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그 주님을 너희가 진짜 믿고 있느냐?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책성 질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3대 째 목회를 하고 있는 집안의 목사입니다. 그가 군에 있을 때 훈련 중에 고관절을 다쳤습니다.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군의관의 말에, 그는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불러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수술을 마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 그는 심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은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에서 자신이 엉터리 목사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세 번을 불렀습니다. 아~ 아무 대답이 없으시다니....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게 확 치밀어 오르며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내가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사실이 비참한 게 아닙니다. 아, 내가 엉터리 목사였구나... 라는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 하나님을 열심히믿고 설교도 열심히 하고 3대째 목사요 사람들로부터 훌륭하다 모범적이다 라는 칭찬을 들어온 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 순간 하나님을 어떻게 찾는지도,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유기성 목사님 보다 나은지 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목사인데도 아프면 어떤 약이 좋은지부터 생각합니다. 어느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지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평소에 얼마나 안이한 목회를 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도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너무 익숙해진 예배는 아니었는지 되돌아 볼 때인 것 같습니다. 영적 잠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겉은 화려하고 엄청나게 큰데, 영적으로도 아름답게 서 있는지 점검해 볼 때입니다. 아니라면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잠잠케 해달라고 엎드려 애원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묻습니다. '코로나 풍랑 속에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경제적 어려운 속에 네 가정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영상 예배로 만족하느냐? 아니라면 예배가 깨어진 이 풍랑 속에 너희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