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1103_설교정리_죽음 그리고 그 이후 (히9:27)

서정원 (JELOME) 2024. 11. 3. 18:13

○ 말씀 전문

[히브리서 9장 27절]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전하신 분

블레싱 초청목사 : 박정근목사 (영안침례교회)

 

○ 받은 말씀

인도의 유명한 철학자인 오쇼 라즈니쉬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도에 한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에게 죽음의 사자가 찾아와 사흘 뒤에 너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걱정에 시달리던 그는 신하들을 모아 이것을 놓고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던 그 때 한 말단 신하가 그에게, 인도에서 가장 빠른 말을 찾아서 그 말을 타고 멀리 도망을 치시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건의했습니다. 마땅한 대안이 없던 왕은 곧바로 말을 구해서 죽자사자 도망을 쳤습니다. 사흘이 된 그 시간, 그는 이제는 따라올 수 없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곁에 있는 나무 거루터기에 걸터앉았습니다. 바로 그 때 그 나무 뒤에서 죽음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왕은 어떻게 자기가 그곳에 올 줄 알고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죽음의 사자가 하는 말, "네게 말을 전하고는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보다 더 확실한 것도 있습니다. 바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멸설입니다.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는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쾌락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다음 하나는 윤회설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람이나 다른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합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어릴 때의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 있었던 것부터야 겨우 기억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돌잔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물며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기억을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엄마 뱃속의 삶이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엄마 뱃속에서 세상 편하게 살았습니다.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탯줄을 통해 공급해주는 영양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명곡들도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재앙이 찾아옵니다. 뭔가가 엄마의 뱃속으로 부터 강하게 밀어냅니다. 설상가상으로 머리부터 디밀게 합니다. 머리가 꺠어질 듯이 아픕니다. 고통을 뚫고 나오자 누군가 찰싹하고 엉덩이를 때립니다. 그러자 우리 눈앞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아름다운 구름이 둥둥 떠 있는 상상도 못한 세상으로 떠밀려 오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새 세상이, 지금의 세상 이후에 또 다른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말에 속지 마십시요. 결코 끝이 아닙니다. 게다가 성경은 다음 세상에는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어떤 죄를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드러난 범죄'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에서 지칭하는 범죄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첫번째 죄입니다.

둘째는 '잘못된 마음의 생각'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마음 속으로 저지른 잘못도 성경은 죄라고 판단합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 마음의 죄도 심판의 대상입니다.

세째는 '목표를 벗어난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죄로 취급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죄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합니다. 누구나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고 로마서 6장 23절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심판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죄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의 성품'입니다. 완벽한 사랑입니다. 이 공의의 성품과 사랑의 성품이 출동한 사건의 결과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4대 성인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런 분이 왜 혹독한 십자가 죽음을 당했겠습니까? 죽으시면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죄 때문에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사랑의 하나님인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셨습니다. 배드로전서 3장 18a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개미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들이 줄을 지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줄의 맨 앞에서 가던 개미가 화롯불에 떨어져 타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따르던 개미들이 줄줄이 회롯불로 떨어서 타죽고 있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그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내가 개미가 되어 내 뒤에 오는 개미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심판을 면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사람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넷째, 그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이가 산길을 가다가 사자를 만나 도망을 쳤습니다. 가다가 보니 절벽이 있고 마침 그 절벽 중간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절벽으로 뛰어내려 그 소나무를 붙잡고 사자를 피했습니다. 이제는 되었다 싶어서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내려다 보니 아래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위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쥐들이 자기가 붙잡고 있는 소나무 뿌리를 갉아 먹고 있었습니다. 아래로도 위로도 갈 수 없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나무 둥걸에 달려있는 벌집이었습니다. 그 벌집에는 맛있는 꿀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손을 뻗어 그 꿀을 따서는 핥아먹었습니다.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독사도 잊어버리고, 소나무를 갉아먹고 있는 쥐들도 잊어버린 채 그 꿀만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요? 이게 우리의 모습,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한 것입니다. 작은 꿀에 취해서 다음 세상을 깨닫지도 기억하지도 못한채 살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요약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심판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고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다시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