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전문
1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2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는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4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들의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도다
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6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7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8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9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 묵상
오늘 말씀은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압을 하룻밤 사이에 싸그리 멸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파멸의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는 가슴이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모압의 혹독한 심판을 바라보면서 연민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압의 멸망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5절과 6절입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그는 모압의 아픔을 생각하며 울부짖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예언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모압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왜 모압을 사랑으로 용서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심판하려 하실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근저에 공의가 자리하고 있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심판도 사랑의 한 수단입니다. 무조건 용서한다면 이땅에 공의가 사라질 수도 있고, 억울한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무조건 오냐 오냐 하며 키운 자식은 자칫 버릇없는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엄하게 키우는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버릇없는 사람으로 커 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권 때, 무조건 오냐오냐 하면서 용서를 앞세웠기 때문에 지금 이땅의 사법권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용서는 정말 용서 받을 수 있을 만큼 잘못을 깨닫고 반성했을 때 주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회 질서가 엉망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사회의 악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용서를 잘 하는 사람만이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맺고 끊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 사회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우고, 법 질서를 바로 세우게 됩니다.
용서는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공의와 정의가 밑바탕이 된 용서여야 합니다. 무조건 용서하는 자세는 어쩌면 자기 얼굴만 드러내려고 하는 자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용서는 공의가 있어야 하고, 그만한 댓가를 치룰 때 일어납니다. 모압이 혹독한 심판을 받게 한 것도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고 구원받은 데는, 그만큼 예수님의 혹독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죄의 소굴로 떨어진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혹독한 죄값을 치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심판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모압과 같이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제가 구원을 받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저 대신 심판하시고, 제 죄를 사하여 주시고, 게다가 하나님의 자녀로까지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에는 언제나 용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심판도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제 다시 심판의 대상이 된다면 더 이상 예수님의 보혈도 없고, 오롯이 제 스스로가 그 심판을 감당해야 함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떠나는 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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