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 묵상
오늘 시편 52편의 표제어는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무엘상 21-22장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3,000명의 군사를 파견할 정도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둘람에서 만난 400명의 동지들과 함께 피신 중에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잡히지 않자, 자기 신하들에게 “(삼상22:8) 내 아들 요나단이 다윗과 맹약을 할 때에도 나에게 귀띔을 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다윗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며 분노를 퍼부었습니다.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나서서 ‘다윗과 아히멜렉의 만남'을 보고합니다.
도엑은 사울의 ‘목자장, 즉 왕궁의 가축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수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에돔 사람이 그런 위치까지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방인이었을지라도 사울 왕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엑은 사울 왕에게 “제가 다윗이 놉 지방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먹을 것도 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삼상22:10) 라고 보고합니다. 사울 왕은 제사장 아히멜렉을 비롯하여, 놉 지방의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들입니다. 아히멜렉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 말에 분노가 치민 사울 왕은 ‘너의 온 집안이 함께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그를 죽이도록 지시합니다. 하지만 사울의 신하들이 꺼려하자, 도엑이 앞장서게 되었고, 결국 도엑에 의해 그날에 에봇을 입은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던 사울 왕은 놉 지방까지 가서 주민들도 모두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액이라는 사람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한사람의 출세욕으로 인해 죄없는 제사장들 85명이 죽임을 당했고, 놉 지방이라는 한 지방 모든 주민들이 도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화가 나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나고, 또 좌절스러웠을 일이었겠습니까? 그런 상태에서 다윗이 지어 부른 시가 오늘 본문 시편 52편입니다.
이런 도액을 향해 다윗은 1절과 같이 말합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포악한 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포악한 자가 된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지식과 인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별별 화나는 일, 좌절하게 되는 일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담하게 되기도 하고, 분에 못이겨 씩씩거리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나게 만드는 사람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땅에 임재하고 있음을 몰라서 저지르게 되고, 화나게 되는 사람이 그 화를 삭이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지 못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사는 부부 간에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서로 자기 주장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오는 대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는 쪽에서도 그 상대방의 말에만 집중하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두 사람 간의 다툼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덩달아서 더 큰 자극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이 주시는 렛슨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포악한 자의 모습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정을 다 보고 계시므로 그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올바른 방법으로 정리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도액 같은 자가 포악한 사람으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역시 아무것도 아닌 자에 불과합니다. 1절에서 포악자라고 한 단어는 '디보르'라고 합니다. 원어로 힘이 있는 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7절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에서는 '이 사람은'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라고 표현한 원어는 '게베르'라고 합니다. '게베르'는 '아무것도 아닌 자'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우리 눈에는 권력이 있고 떵떵거리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자는 단지 '아무것도 아닌 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담대하게 상황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게 해 줄 것입니다.
분노와 좌절 같은 평안하지 않은 삶은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며 살 때 일어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게되면 이웃에게, 가족에게 '포악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깨달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8절과 9절과 같은 믿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 하면서도 그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고 나를 항상 지켜보고 계심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힘들게 하고, 이웃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게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영안을 갖게 하옵소서.
더욱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더 자주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더 자주 예배를 드리고 하옵소서.
그리고 제 기도에 응답하시어, 그 응답을 통해서도 늘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늘도 저와 동행하시며 저의 일거수 일투족을 인도해 주실 것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디보르 포악한자
게베르 아무것도 아닌자
아히멜렉과 도액
포악한 자, 인자한 분, 나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이 보임
그러면 8절과 9절을 믿고 선포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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