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 받은 말씀
이동원 목사님은 저서 '역경에 무릎 꿇지 마라' 의 서평에서 '하나님은 이길 힘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역경 아래서도 무릎을 꿇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하고 민족을 다시 세우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느헤미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포로로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끝까지 믿은 덕분에 이길 힘을 가지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도 무너진 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또는 건강 문제, 직장 문제, 자녀 문제 등에서 주저앉고 싶은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고 어떤 의식으로 살기를 바라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인생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무너진 성과 같은 암담한 현실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1. 성공에 오염되지 않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의하면, 느헤미야는 수산궁에 살고 있었고,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수산궁은 페르시아의 네 수도 중의 하나로 왕이 거주하던 나라의 중심지였습니다. 시골 소도시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의 서울처럼 나라의 중심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당시 왕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이 음식이었습니다. 독살의 위험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관장하는 사람은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 왕의 측근에서 가장 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공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영성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세운 성전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자기 동족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오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이 환란 속에서 살아가고, 능욕을 당하고, 기대어야 할 성벽조차 무너진 참담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는, 돈과 권력이 주어지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오염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 선교를 다녀온 우리 교회 청소년들을 통해, 우리 청년부 성도들의 영성이 오염되지 않고 깨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필리핀 세부는 이름난 관광지입니다. 젊은 생각에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추억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세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좁디 좁은 예배당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찬송하고 예배드렸던 것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한지 6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개척 당시와 비교하면 많이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장하면 돈과 권력이 어느 정도는 주어진 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영적으로 오염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잠언 27장 23절에서는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라고 합니다. '무리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유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의거하여 대심방계획을 세웠습니다. 코로나와 불경기로 성도들의 삶의 형편이 많이 어려워진 탓에, 그들의 마음을 살펴야겠다는 마음이 주어졌습니다. 어렵더라도 스스로 목사를 찾아와서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을 통해 찾아뵙고 살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단 목회자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 스스로가 이웃을 살피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영성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서, 보는 것 듣는 것으로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인식하여, 함께 세워주는 이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의 서두에 하가랴의 아들 느혜미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가랴는 '어두어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위로하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일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항상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환란 속에 놓여있고 온갖 능욕을 당하는 차에, 성벽과 성문조차 허물어져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여겨지는 그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환란과 능욕과 허물어진 성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수일 동안 슬퍼했습니다. 동족들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영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힘든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민족들, 또 위정자들에 대해 울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암울한 현실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탁하는 첫번째 일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운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한 두번째는 기도였습니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고, 세상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5절에서 그 해답을 줍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두 가지 특별한 어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첫번째인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땅 이스라엘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여겨질 때, 그곳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두번째인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왕정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왕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왕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보다 크신 분입니다. 우리가 부딛치고 있는 그 어떤 문제, 그 어떤 어려움 보다도 훨씬 크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사장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승진에서 밀릴까봐 일터에서 짤릴까봐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돈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온통 돈돈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앞서 사장이나 돈을 더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환경 아래서도 무릎 꿇지 않고 다시 일어나려면, 무너진 삶의 성벽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훨씬 크신 하나님이 있다는 것, 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3.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남아 있는 동족들에 대해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고, 금식하고 기도할 수 있었던 데는 느헤미야에게 남다른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6절에서 보여줍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바로 '우리'라는 의식입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고 금식하며 기도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우리'라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과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8절입니다. "주께서는 주의 종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세계 각처에 흩어 버릴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모세처럼 백성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울면 자기도 울고, 백성이 아프면 자기도 아플 수 있는 '우리' 의식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지구촌교회에서 사역자들이 보고서를 올리면 이동원 목사님이 크게 고치라고 하지는 않으셨는데 유독 '지구촌교회' 라고 표기된 부분만큼은 '우리 교회'로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라는 의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교회가 커지면 '누군간 하겠지' 라는 사고가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런 곳을 통해 교회가 틈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교회를 '신동탄지구촌' 교회라 부르지 말고 '우리 교회'라고 부르는데 익숙해져야 하겠습니다.
필리핀 청소년 선교사역을 마치고 온 후 또 하나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선교회에 참석했던 한 청년의 어머니에 대한 간증입니다, 그분은 권사님인데, 자녀로부터 그곳에서는 3~4평 밖에 되지 않은 예배실에서 30~40명이나 되는 성도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찬송에는 기쁨이 흘러넘쳤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온 자녀의 영성이 훌쩍 컸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조금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기려고 들어 두었던 청약 통장을 깨뜨려서, 필리핀 선교지 교회에 보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의식 속에는 필리핀에 있는 아이들도 우리 아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가 빠르게 부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빠른 부흥이 독이 되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라는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면 말입니다. 그것이 가장 염려가 됩니다. 우리 교회 신축 공사가 곧 시작이 됩니다. 그 건축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함께 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의식 속에서 함께 기도하지 않고 세워지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교회 건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우리라는 의식을 단단히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 우리라는 의식이 굳게 자리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 역경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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