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21023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10)_성공이 아닌 승리하는 교회의 비전 (마 16:16~18)

서정원 (JELOME) 2022. 10. 24. 06:06

○ 말씀전문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설교요약

윤복희씨의 '우리'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지난 주 신학대학 졸업 30주년 기념 예배에서 동기들과 함께 불렀는데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 외로움도 견뎌 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나를 비웃는 그 비웃음 들을 주의 사랑으로 받아주겠소

이 모든 것이 힘들다는 것을 주님은 나에게 알려줬소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넓고 크오 그래서 나는 살아가겠소

 

우리 모두 손을 내밀어서 넘어진 형제 일으켜주세

사람이 살면 한 번 사는 것 걸음 멈추고 생각해보세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서 저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 돼야 하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오

 

자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저 험한 벌판을 걸어서 가세

가다 보면 폭풍도 지나고 캄캄한 밤도 지나갈거요

높은 산 올라갈 때도 있고 푸른 초원도 지나갈거요

서로를 위하고 우리가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겨나갈거요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은 배워서 한 말들이 아니오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쁜 것은 말 안 해도 우리는 알지 않소

오죽하면 나 같은 바보가 여러분들께 호소하겠소

우리는 하나요 당신과 나도 하나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오

 

자 옆에 있는 형제 손을 잡고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서로 보며 인사도 나누고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우리 모두 발을 구릅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맞을 때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 돼야 하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미션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미션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새로운 교회 건물을 신축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토지에 대한 대금은 다 마쳤고, 이제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계사와 건축설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계사가 우리와 협의를 할 때 항상 사용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라는 단어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섬기는 신동탄지구촌교회 성도는 아니지만, 항상 '우리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참 좋게 느껴졌고, 대화 속에 귀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우리 교회가 변함없이 간직하고 사모해야 하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교회는...

 

1.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읽고 그 속에 내재된 중요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8절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를 세움은 '이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여기서 반석이란 앞서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에서의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목사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입니다. 

개척을 시작했을 당시, 개척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그간 제게 호의적이었던 분들에게 함께 해주실 것을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호의적이라고 여겼던 세 분에게 제일 먼저 가서 부탁을 했었는데 모두에게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다른 분들에게 부탁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괜히 교회에 잘 다니고 있는 분들에게 마음의 분란을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또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기도 시간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왜 사람 만나기를 미안해 하고 주저하느냐? 세우려고 하는 교회가 네 교회냐? 내 교회가 아니냐?"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 하면서도 은연중에 내 마음에 '내 교회'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함께 하실 분들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세워가는 이 교회는 저의 교회가 아닙니다. 몇몇 앞서 일하는 사람들의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은 목사를 위한 헌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헌신입니다. 이 인식이 확고한 교회가 우리가 사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입니다.

사사기 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와 그곳에서 살 때, 그들이 잘 한 것과 소홀했던 것이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잘 한 것 두 가지와 잘못한 것 두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잘 한 것 두 가지입니다. 2장 6절과 7절입니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첫째, 그들은 가나안 정복의 미션을 잘 수행하여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둘째,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잘 섬겼습니다. 

다음은 잘못한 것 두가지입니다. 2장 10절과 11절입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첫째,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입성 1세대들로 부터 그 다음 세대들은 귀가 따갑도록 여호와에 대해 들었을 텐데도, 진짜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신앙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다른 세대'입니다. 분명 다음 세대인데도 '다음 세대'라 하지 않고 '다른 세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다른'은 다른 의미입니다. 어른들은 자기 세대는 잘 살아왔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완전히 '다른 세대'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나라 성인은 20%대의 복음화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 세대의 복음화율은 3%대에 그칩니다. 3%는 미전도 종족들의 복음화율에 해당됩니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60%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대로 방치해서는 우리 나라도 믿음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불신의 '다른 세대'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를 다른 세대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헌신을 해야 합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고, 다음 세대들을 양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우리 부모 세대들의 헌신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식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려면 우리가 헌신해야 할 몫이 있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는 것도 우리가 다음 세대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음 세대를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음 세대를 잘 양육하는 것을 소망으로 가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성공하는 교회가 아니라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에 대해 그 안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뜻은 어떤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2장에서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2장 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해 각 교회마다 하신 말씀 중의 일부입니다. 매 교회마다 빼놓지 않고 언급하신 것은 들을 귀가 있는 자라면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영어로 Overcome입니다. 더 쉬운 말로 번역하면 '승리하는 자에게는' 이라는 뜻입니다. 11절과 17절에서도 똑 같이 강조합니다. '이기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가 되라'라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승리하고, 예배에서 승리하고, 말씀에서 승리하는 교회가 되라고 하십니다.우리 교회는 짧은 기간에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개척한지 5년도 되기 전에 새 성전을 건축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목사들 마다 어떻게 그렇게 성공을 했느냐고 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성공'을 묻는 그들에게서 아픔을 느낍니다. 나에게는 성공보다는 승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수가 적은 시골 교회 중에도 승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사이즈가 커져서 성공한 교회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우리는 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추구할 소망을 성공이 아닌 승리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신축하고 나면, 제가 성공에 도취하지 않고 승리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더 기도해 주셔야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환경, 어떤 형편에 놓이게 되더라도 성공이 아닌 승리를 위해 달려가는 교회가 되도록 소망합시다.한가지만 더 덧붙이고 오늘 말씀을 끝내고자 합니다.미국 미조리주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에는 작으마한 미용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미용실로 밀려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하나 같이 빡빡머리로 깎아달라고 했습니다. 의아한 미용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교회의 성도들이었는데, 그 교회의 성도 수는 50여명 남짓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한 여중생이 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머리가 다 빠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다며 교회에도 나오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지낸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인들이 의논을 한 결과 그 학생을 위해 모두가 삭발하자고 결정을 했고, 그래서 미용실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그 미용사가 그 미담을 지역 방송국에 알렸고. 그 다음 주 주일에 그 학생의 부모가 아이를 설득하여, 모자를 씌운 채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 아이는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무척 당황했습니다. 모두가 빡빡머리였기에 자신이 모자를 벗어야 하는지 망설였습니다. 그 학생은 용기를 내어 모자를 벗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연을 촬영하던 방송국 리포터는, "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교회에 나가기로 마음 먹게 된다면 이런 교회에 나가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 주님의 교회가 주님의 교회답게 만들어지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주님의 교회답게,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상각하며 맞이하는 새로운 이 한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