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창세기 2장 1~3절)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설교요약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유찬 시인의 [쉼표이고 싶다]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쉼표이고 싶다
쉼표처럼
휴식을 주고 싶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어김없이
당신 옆에 찍히는 쉼표
그 쉼표와 함께
당신이 잠시 침묵하거나
차를 한잔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생기 있게 다음 줄로
넘어가면 좋겠다
다음 줄로 넘어가
내용을 만들고
지치면 또 쉬다
하루를 마감하는 당신의 일장엔
마침표가 되어 찍히고 싶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면 행복하겠다
그렇게
쉼표가 되고
마침표가 되어 살다가
우리 황혼의 끝날..
약해지고 늙어진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는
마침표가 아닌
영원한 쉼표로 남고 싶다
사랑한다
한 해가 여물어가는 이 가을, 우리가 잠시 생각해 볼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안식이 되고 쉼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 너무나 힘들어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고 할 때라도, 아니라고 지금은 우리에게 안식과 쉼이 필요할 때라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가정, 교회, 일터 공동체도 이런 안식과 휴식이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이런 안식의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1. 열심히 일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보낸 하루만이 평안한 안식을 선물한다" 라고 했습니다. 매일 노는 사람에게 안식이란 무의미한 말입니다. 안식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안식에도 항상 붙어다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일을 마치고' 입니다.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그 뒤에 안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주어진 일에 열심히 책임을 다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부터 10절에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은 열심히 일한 땀의 대가요 선물입니다.
지난 주일, 3부 예배까지 마치고, 새롭게 시작된 '전도폭발' 과정에서 강의를 하고, 참석자들과 함께 저녁식사까지 한 후, 늦게 귀가를 했습니다. 너무 피곤하여 잠시 소파에 앉아 졸고 있으니 아내가 들어가서 자라고 했습니다. 곧바로 씻고 들어가 골아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푹 잘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이요 축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터에서 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나면 퇴근길 어깨가 묵직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릴 없이 어영부영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어 회사를 나서면 허전하고 인생을 낭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 뿌듯함을 느끼려면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이후에 진정한 안식과 쉼이 찾아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어떤 사람의 글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과 지친 몸을 지하철에 싣고 귀가를 하던 그 사람은 서울지하철4호선 기관사의 멘트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멘트가 나오는 시간에 마침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고 서쪽 하늘로는 노을이 넘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근래 유독 진상이 많은 날, 종종 울면서 퇴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기관사의 멘트를 듣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기관사의 따뜻한 위로의 말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현재 극장에 앉아 계십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일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나오는 광고들입니다. 곧 여러분들의 인생이 영화처럼
멋지게 상영될 예정입니다. 저희 열차는 현재 한강을 건너고 있스니다. 슬픔과 힘듦은 모두 강에 던져버리고 가시길 바랍니다' "
이 글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댓글입니다. "아직 대한민국은 따뜻하네요. 글을 보니 노을지는 한강을 지나는 지하철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습니다. 이런 게 또 살아가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죠. 따뜻한 글 잘 봤습니다"
이런 따뜻함, 이런 아름다움, 이런 위로가 있는 공동체 속에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 공동체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우리 일터, 우리 교회에 이런 안식과 쉼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이 한 해, 바로 그 열심히 일한 사람입니다. 따뜻한 말로 따뜻한 가슴으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안식은 똑 쉴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격려,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안식이 됩니다. 그런 세상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의 주인되심을 먼저 인정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봅니다.
먼저 깨끗한 옷으로 단장한 주부가 금요일 일몰 직전에 두 개의 촛불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인식일은 시작됩니다. 한 촛불은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을 상징하고 (창20:8), 다른 촛불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상징합니다 (신5:12). 주부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지어다.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우리를 신성하게 하시고 안식일 촛불을 켜게 하셨습니다' 하고 말하면, 가족은 일제히 '아멘, 샤밧 샬롬' 하고 답하면서 축복의 인사를 서로 나눕니다. 그리고 안식일 축복 노래를 부르며, 가장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어 가장은 단 포도주 잔을 들고 '신성한 안식일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천지창조를 기억하게 하시고, 또 우리를 애굽에서 구해주신 것을 기억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를 한 후, 포도주 잔을 온 가족이 돌려 마신 다음 안식일 저녁 식사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맞이하기 전에 하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바로 전 날인 여섯째 날에는 무엇을 하셨을까요?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바로 전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맞이한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안식을 취하신 후 그 다음 다시 일하셨습니다. 안식하고 일주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의 시작일이 일요일입니다. 그럼 안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요? 그것을 오늘 말씀 3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복되게, 거룩하게 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주일은 복된 날, 행복한 날입니다.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구별한 날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르바 던은 그의 책 '안식'에서 안식의 의미를 4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그침, 둘째 쉼, 셋째 받아들임, 넷째 향연(축제) 입니다. 왜 우리에게 안식이 없어졌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에게 안식이 사라진 것은, 내가 하나님 되려는 마음, 가정과 일터에서 내가 모든 것을 붙들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침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스스로, 내가 다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내가 주인되려는 마음을 그칠 때, 그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두셨음을 신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모교에서 사역할 때, 유학까지 다녀온 한 후배가 모교로 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러 왔었습니다. 그분이 배정된 부서 선임 사역자가 그 후배에게 맨 처음 복사하는 일을 맡겼고, 의자 정리와 교회 청소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러려고 유학까지 가서 공부를 하고 왔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던가 봅니다. 결국 그 후배는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그것을 바로보는 내 마음에 안타까움이 가득했었습니다. 그 후배도 아마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안식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여기 나를 두셨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2장 8절과 15절입니다.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거기 두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동산에 두어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두신 그 자리가 바로 안식의 자리입니다. 우리를 지금 여기 두신 것,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자리라는 것을 아는 자, 그가 안식을 얻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안식을 잘 누린 자는 요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수로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그가 원망하거나 불평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비록 죄수의 처지, 노예의 자리였을지라도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그 자리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라고 여겼습니다. 창세기 45장 8절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노예로 팔았지만, 그는 그것을 형들이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하셨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젊은 시절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두셨다는 신뢰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안식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 나를 두신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가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6월 쯤으로 기억되니다. 친구의 후배 목사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그곳에 걸려있는 시를 보고는 나도 저걸 하나 사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를 함께 보며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시의 제목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입니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925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7)_Faith Mission의 Vision (히 11:6) (1) | 2022.09.26 |
---|---|
220918_설교정리_사모하는 공동체 (6)_Love 공동체의 비전 (요일 3:14~18) (1) | 2022.09.19 |
220904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4)_살아있는 기도공동체의 비전 (엡 6:18) (1) | 2022.09.05 |
220828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3)_성장과 성숙의 비전 (골 1: 28~29) (0) | 2022.08.29 |
220821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2)_셀 공동체의 비전 (엡 2:19~22) (0) | 2022.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