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에베소서 6장 18절]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설교요약
미국의 한 제재소 직원이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자 책상 위에 "당신을 해고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놓여있었습니다. 갑작스런 통보에 그는 분노하였고 복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포자기한 그는 집을 떠나 흥청망청 지내다가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원망 같은 푸념을 널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그에게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한가지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다"며, 그것은 진지한 기도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차분히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에 가득해 있던 분노와 복수심이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아무 생각이 없던 그에게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는 제재소에 근무하는 동안 간혹 여행을 다니곤 했었는데, 여행을 다닐 때마다 저렴하면서도 질이 좋은 호텔이 없어 아쉽다는 것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로 그런 호텔을 지어갔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한번쯤 이용했던 Hollyday-In Hotel이며 그가 그 창립자인 월리스 존슨입니다. 이처럼 가격대비 좋은 호텔 홀리데이-인 호텔은 기도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기도 신학자인 이멤 바운즈는 "진정한 한 시간의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서재에서 몇 시간 배우는 것 보다 많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책이 골방에 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내리지 않는 계시가 골방에서 내린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공동체의 일, 바로 기도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이 은혜를 입어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집',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우리 목장,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이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언제 기도해야 할까요?
1. 일이 시작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샘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일이 시작될 때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 전에 광야에서 40일 간을 기도하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택하실 때도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과 13절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전에도 기도 하셨고, 십자가 죽음을 앞 둔 전날 밤에도 기도로 그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1절과 44절입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41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44절). 예수님도 일이 시작되기 반드시 기도를 하셨는데, 연약한 우리야말로 더욱 기도로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기도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좋은 샘플은 모세가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터에서 기도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장에 내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고 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전장에서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승부는 기도에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승부가 결정되는 자리, 그것이 어떤 승부이든 간에 우리는 그때가 기도해야 할 때 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마도 이 전쟁에서 그것을 듣고 가장 감동을 받은 자는 여호수아였을 것입니다. 그는 그때부터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기도 자세를 출애굽기 33장 11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기도가 그의 새로운 Life Style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모세는 자기 숙소로 돌아가 편안히 쉬었지만, 여호수아 그는 회막을 곧바로 떠나지 않고, 기를 쓰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기도하는 자리에서 먼저 승리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기도하는 자리에서 먼저 승리해야 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승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앤드류 보나는 신앙에는 중요한 규칙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먼저 말씀드리기 전엔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둘째,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떠한 책도 읽지 않는다 입니다.
하루가 시작될 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을 먼저 만나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생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았을 시기, 베드로마저 감옥에 갇히자 온 교인들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0절입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 옥문이 열리게 된 배경이 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한 개인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것, 그것도 우리 공동체가 해야 할 몫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낸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천사를 움직인 것은 교회의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 때문이었다".
나는 100년 이상 된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도 한 달만 기도를 멈추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미국에 갈 기회가 있을 때, 많은 한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인들 중에 모국인 한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게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한국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런 비난을 듣고 그 미국인이 그 사람을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볼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이 비난하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안좋은 이야기 대부분이 교인들을 통해 밖으로 나갑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더 많이 비난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그 성도를 존경할까요? 똑같은 족속이라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 한민족에도 위기입니다. 교회에도 위기입니다. 이 때도 우리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말하기를 좋아하기 전에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한홍 목사님의 [내게 힘을 주는 교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머릿수만 많다고 공동체가 되는 게 아니다. 공동체는 서로의 책임을 완수할 때 든든히 세워지는 것이다. 다들 각자 제 살길 찾겠다고 흩어져서 책임이 무너지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도 무너지게 된다. 나와 공동체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나가야 될 때 나가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진다. 버텨야 할 때 버텨주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진다. 특히 재능있는 자, 힘이 있는 자가 자기 자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전체가 죽는다. 그래서 가진 자의 이기심이 가장 무섭다.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배를 무너뜨린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다 함께 산다"
우리 교회가 함께 하는 신건축 비전이 드디어 조감도를 완성했습니다. 부지 대금이 완료되고 이제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이 분명하지만, 사단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분란이 틈타게 되면 지금까지의 일도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이 우리가 기도할 때입니다. 사단이라는 장애물을 앞에 두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번 목장이 재편되고 나서, 첫 목장 모임이 있을 때, 한 목장이 목자와 한 자매만 참석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고 기도를 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번에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기도를 해 가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 목원들이 자리를 채우고 드디어 6명이 함께 자리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실 때, 우리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음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한번은 밤에 자다가 문득 부산에 있는 친구 생각에 잠을 깼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야밤에 전화를 하는 것도 뭐하고 해서 그 친구를 위해 한참을 기도를 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안부 전화를 거는 채 하면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지난 밤에 교통사고를 내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습니다. 야밤에 운전을 하다가 깜빡 졸아서 대형 버스와 충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충돌 직전에 차가 딱 멈추어서 큰 사고가 되지는 않았다며 다행이라 했습니다. 그때 다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깨우셨고 기도하게 하셨구나 함을 말입니다.
개인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문제가 없는 완벽한 곳은 없습니다. 그 문제가 송곳처럼 튀어 나오면 풍선같은 우리가 터지고 무너지게 됩니다. 기도는 이 송곳을 무디게 해줍니다. 한번의 기도가 조금 무디게 하고, 두 번의 기도가 더 무디게 만듭니다. 특히 중보기도는 그 송곳을 아예 송곳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기도가 삶의 전환점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웨슬리 듀엘의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960년 케냐 마우마우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선교사 메트 히겐스 부부가 마침 그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우마우 지역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을 때, 차가 고장 났습니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케냐인과 선교사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밤을 지냈습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고 차를 수리한 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휴가를 얻어 미국으로 가서 클레이 브랜트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최근에 3월23일 밤에 무슨 위험한 일이 없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날 밤에 갑자기 이 선교사 부부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부담이 자꾸 들어서, 기도하는 사람 16명을 모아서 그 부담과 걱정이 사라질 때까지 합심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지역 목사님을 통해서 안 사실은 그 시간에 마우마우의 한 테러범들이 선교사 부부를 죽이기 위해 차에 접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6명의 장정들이 칼을 들고 차 주변을 지키고 있어서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16명의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지키신 겁니다."
기도에 깨어있는 한 사람만 있으면 교회 공동체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며, 상처난 사람이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로 깨어있는 파수꾼, 중보 기도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파수꾼이 있으면 사는 것이고, 없으면 죽는 겁니다. 누가 공동체의 기둥입니까? 기도에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나라가, 교회가, 가정이, 각 개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중요한 두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이 한주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또 하나는 "사람은 비전만큼 살고, 기도만큼 이룬다" 입니다.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또 마태복음 7장 7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말씀들을 붙잡고 늘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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